사회적 대전제, ‘정부’를 해부하는 도전적 사유
왕권에 대한 도전에서 근대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프랑스의 대혁명—이 두 사건은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무너뜨리고 중세의 질서를 종식시켰습니다. 왕권이 하늘이 부여한 권리라는 ‘왕권신수설’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고, 새로운 사회규범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현대적’이라 믿는 사회규범 또한, 미래 세대의 눈에는 낡고 비합리적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사회계약론을 넘어: 정부의 본질을 묻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규범, 그것은 바로 정부입니다. 특히 행정부는 시대를 거듭하며 그 영향력을 비대하게 확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사법부와 입법부는 이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고 있을까요? 라스바드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법부의 장을 임명할 권한이 행정부 수장에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견제와 균형’은 개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의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게다가 전쟁은 언제나 정부의 규모와 권한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귀결됩니다.
국가는 ‘우리’가 아니다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아닌가? 라스바드는 말합니다. 국가는 ‘우리’가 아닙니다. 사회유기체론이 상정하는 획일적 공동체, 그 속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수많은 자율적 개인들의 집합체일 뿐이며, 국가를 ‘우리’로 동일시하는 순간 개인의 존재는 지워집니다.
기술의 발전과 자유의 확장
미제스가 세운 학문은 단순한 가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검증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합리성과 행동 양식을 토대로 한 하나의 과학적 체계입니다. 오늘날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은 그 사상이 지향하는 사회—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극대화된 사회—를 실현할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마치며: 정부 없는 사회, 무한한 자유의 시장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시대에도, 흑인의 인권을 외치는 목소리는 쉽게 묵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리버테리안 또한 같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정부가 없는 사회, 그리고 시장이 모든 선택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이제 그 꿈을 더 이상 이상향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아나코-캐피탈리즘적(무정부 시장주의) 사회의 도래는, 점점 더 현실적인 미래로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