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실 전 문체부 차관 「세계화시대에서의 한국의 문화정체성 향상 방안」
“… 문화는 고립 속에서는 망하나, 주체성 있는 교류 속에서는 흥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 문제는 얼마나 우수한 다른 문화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우리 것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느냐에 있다.”
(김장실, 「세계화시대에서의 한국의 문화정체성 향상 방안」, 2001 문화정책논총, p.157)
2025년 현재, 한국은 더 이상 문화 수입국이 아닌 문화 발신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던 한류의 물결은 이제 BTS와 여러 드라마, 그리고 최근의 K-Pop 데몬 헌터스와 같은 새로운 콘텐츠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이 문화적 영향력을 세계에 발신하는 주체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러한 성취는 압축적 경제성장(‘한강의 기적’), 1980년대의 민주화,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완성된 ‘K-컬처’라는 소프트파워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세계 근현대사에서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경제력, 민주주의, 문화력을 모두 확보한 국가는 드물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자축보다는 내면의 뿌리를 다질 시기다. 문화 발신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김장실 전 차관이 제시한 바와 같이 ‘정신문화 한류’의 키워드를 발굴해야 한다.
그는 한류의 발전 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제성장 → 민주화 → 문화상품의 한류 → 정신문화 한류
즉, 물질적·제도적 기반 위에 정신적 가치의 발신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류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한국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이데올로기적 키워드— 예컨대 ‘한(恨)’이나 ‘정(情)’과 같은 문화적 개념을 포함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이데올로기'를 개발해, 세계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IMF 외환위기 이후, 공동체의 결속이 약화되고 개인주의가 확산된 현실 속에서, 과연 오늘날의 시민들이 ‘한’이나 ‘정’이라는 개념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신문화 키워드를 국가 차원에서 개발하고, 이를 세계화 및 문화정체성 담론 속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때 비로소 한국의 문화정체성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