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의 추억
격동의 1970년대, 고시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거의 유일하게 계층 상승을 보장해 주던 길이었습니다. 고학생들은 가족의 희생에 보답하고자 청운의 꿈을 품었고, 그만큼 치열한 경쟁과 무거운 책임감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시 준비가 언제나 순탄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고, 심적 부담에 짓눌릴 때가 찾아옵니다.
아버지도 그러했습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산란해지자, 결국 절에서 공부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용문사와 백률사. 아버지의 청춘이 깃든 두 곳입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절 주변을 산책하며 좋아하던 노래들을 흥얼거리곤 하셨는데,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곡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였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 대중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자, 동명 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합니다. 당시 떠오르던 청춘스타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영화 역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주제곡인 ‘동백 아가씨’의 열풍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방송국 인기가요 차트에서 무려 35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심지어 ‘왜색조’ 논란으로 방송과 음반 제작이 금지된 이후에도 판매량이 100만 장을 넘겼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래와 영화는 60년대의 사회구조를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1960년 초부터 본격화 된 소위 '조국근대화' 운동의 열풍을 타고 많은 남녀가 대거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열심히 돈을 벌고, 공부를 해서 출세를 했습니다. 그런 남성은 도시 출신의 잘 나가는 집안의 여인과 인연을 맺으면서 고향을 떠날 때 사귀던 시골 여성은 버림받게 됩니다. 이 노래는 이런 여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아냈습니다.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직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애절한 멜로디와 감정선을 잊지 못해 성인이 된 후에도 이 곡을 늘 흥얼거리셨다고 합니다. 절에서 공부하던 시절, 산바람을 맞으며 이 노래를 불렀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슴 시린 사랑을 노래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조심스레 청취를 권유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IOgXP6NoFo&list=RDtIOgXP6NoFo&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