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반 시절의 추억
아버지가 대학 고시반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때는 고학생들이 많아 TV는 물론, 라디오를 갖고 있는 학생도 드물었습니다. 고시반의 같은 방에 머물던 선배 한 분이 일제 ‘내셔날’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선배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묵묵히 공부하곤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유난히 아름다워 선배에게 곡명을 물었더니, “Sunrise, Sunset”이라는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제곡이라고 했습니다. 이 곡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노래합니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가,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는가.”
작았던 자녀들의 성장과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담은 가사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져, 가슴이 아려옵니다.
아버지는 서정적 선율과 가사에 깊이 빠져들어 선배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이 노래를 더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배는 “CBS ‘아침의 음악 편지’를 들으세요. 간단한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보내면 틀어 줍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다만 언제 신청곡이 방송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지만 몇 주 뒤 아침, 라디오에서는 정말로 아버지의 신청곡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대 고시반 ○○ 학생이 신청한 ‘Sunrise, Sunset’을 고시반원들과 함께 들어주십시오.”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라디오에서 흐르던 그 노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로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아버지는 뜻밖의 항의를 받았습니다.
“왜 고시반 사람들만 언급하고, 우리 과 친구들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그들의 신청곡까지 모아 CBS에 함께 보냈습니다.
그렇게 라디오의 작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음악은, 그 시절 젊은이들의 아침과 하루를 지탱해 주던 소중한 위로였던 것 같습니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 덕분에 원한다면 몇 초 안에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 가난한 젊은이들이 설렘을 품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그 음악이 흘러나오기를 며칠이고 기다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며—저는 조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시절의 청춘은 그렇게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한 사람의 젊은 날을 견디게 한 작은 빛이었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_Sw_5qIR5M&list=RD9_Sw_5qIR5M&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