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인의 마음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리뷰
1.
신화야말로 문자가 생기기 전, 인간이 문명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저자의 기본 전제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 그대로, 신화를 이해하는 것이 인간의 원형, 본성 등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이라 주장한다.
2000년대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읽을 때만 해도 저런 생각에 열정적으로 사로잡혔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나이브하고도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어 허탈하다. 게다가 그랬던 이윤기가 실은 나카자와 신이치를 비롯한 직전 신화학자들을 우라까이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서글픔까지 더해져 입맛이 씁쓸하다.
모든 학문은 결국 지금 이 시대의 학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만큼의 눈만 가질 뿐이니 말이다. 역사학을 연구한다고 해서 정말 과거 시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한 착각이자 오만이다. 우리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읽는다고 해도 우리는 끝내 김부식의 의도와 생각을 알 수 없다. 다만 현 시대, 나의 주관에 따라 재해석된 메시지를 창조해낼 뿐이다.
지금 살아 있는 저자들,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책이나 작품을 읽고 보아도, 우리는 그들의 참뜻을 알 수 없지 않는가. 내가 지금 당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진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과거와 경험에 비추어 내 방식대로 읽어낼 수만 있다.
신화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민담이나 신화 등을 읽는다고 했을 때, 이미 그 이야기는 몇 천 년 전부터 그대로 생채기 하나 없이 전해지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씹고 뜯기고 맛본 다음에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아예 처음의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것들이다. 가령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고작 몇 백 년 전까지만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유럽에서 인쇄혁명이 있고 난 후까지 말이다. 그전에는 이런 거리의 이야기들은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
철학도 똑같다. 우리가 플라톤의 [국가]나 [대화]를 읽는다고 해서, 정말 그 시대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마 우리는 영원히 소크라테스의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고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착각만 얻는다. 그 착각을 진실이라 믿는다. 나는 모든 학문의 내용이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0년보다 더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지금의 대학과 학과가 생긴 게 그 정도의 시간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학문은 할 수 없고 오직 신화학을 통해서만 고대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생각은, 자기 학문에 대한 지나친 뽕이자 자부심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자부심 자체가 무의미하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이 뽕에 차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메타인지의 부족이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가치 있는 부분이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전 세계의 신데렐라를 예시로 들며, 지금 우리가 해석하는 신데렐라가 지극히 현대적으로 오염되어 있는 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데렐라를 읽으며, 결혼, 남녀 문제, 신분 상승의 차원에서만 해석한다. 결국은 다 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그런 데에 있지 않다는 게 나카자와의 주장이다. 새, 콩, 재, 아궁이 등을 통해 신데렐라가 어떻게 죽은 자의 세계를 매개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거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교차하는 접점의 신비에 대해 강조해서 말하는데, 그 접점에서 두 세계를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접점이 앞서 언급한, 새, 콩, 재, 아궁이 같은 것들이다. 고대인들은 다른 세계를 넘나들기 위해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총동원했다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그러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돈으로 다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만나는 접점에는 반드시 돈이 있다. 돈만 있으면 뭐든 다 교환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신분 상승을 해서 돈을 많이 벌까, 그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계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신비도 경외감도 우주에 대한 호기심도 다 망각하고 말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대인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나카자와는, 신화의 본래 모습과 해석의 방향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