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신 01.
처음 고양이를 잃어버린 때였나. 아침이면 부지런히 야옹야옹 울어대던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나갔는지 의문만 남기고 두문불출한 나의 고양이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바쁜 아침에 한 칸짜리 원룸을 몇 번이나 둘러봤는지 모른다. 마지못해 회사에 간 나는 온종일 편치 않은 마음으로 업무를 하다가 상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발 저희 고양이를 찾게 도와주세요.” 다행히 그날 저녁 7시쯤, 멀리 가지 않고 다른 층 복도의 창문 틈에 끼어 유유히 앉아있는 고양이를 찾아 집으로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보다 더 전을 돌아보자면, 대학 졸업반에 이른 나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는 내가 과연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취업문을 두드려도 모자랄 판에 그 일 자체에 두려움이 일어 소극적인 자세만 취하고 있으니 내 마음에는 더욱 불똥이 떨어졌다. 한 때는 쾌활하고 당찼던 성격이 대학을 거쳐오면서 왜인지 소심함만 극대화되던 시절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나는 속으로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 저 취업하게 해 주세요. 월급은 200만 원 이상, 또래가 많아서 어울리기 좋은 곳으로요. 제발요.” 그 뒤 운 좋게 학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월급은 200만 원 보다 많았고, 또래 친구들이 여럿 있어 동료들과 가깝게 지내며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더 어린 시절에 나는 아빠를 위해 기도를 했다. 하루는 새벽이 되자 방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성웅성 들렸다. 그 뒤 주무시던 아빠가 갑자기 위독하여 응급실에 갔다는 소식을 작은엄마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따라가는 바람에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부모님이 두 분 다 보이지 않자 불안함이 일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계속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제발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빠는 수의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교회를 다녔던 나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양가적 감정을 동반한 채였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그 경외심을 앞세운 두려움이 내 안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교회를 다니는 종교인으로서 가질 법한 당연한 감정인지도 몰랐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시작했고,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에는 유일한 자와 힘이 센 자에 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교회를 다녀온 내가 달리 어떤 신을 더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일단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짖을 수 있다는 건 꽤 특혜를 입은 일 같이 느껴졌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할 존재가, 또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만큼 든든한 경우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하나님은 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 그동안 내가 알아온 신은 '부탁하고 - 부탁받는' 역할에 충실한 하나님이었는데, 신은 이보다는 더 크리라는 느낌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교회에는 이런 내 마음속 작은 일렁임을 꺼내놓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 미묘한 속내를 교회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순간 분위기가 미묘하게 불편해졌다. 게다가 어떤 목사님은 예배 시간에 성경 해설보다는 헌금 강요에 열을 올리곤 하셨다. 그로써 풀지 못한 내적 혼란은 더 꽁꽁 얽매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대학을 갔을 때, 인상이 딱딱해 보이는 한 강사님을 만났다. 그 강사님은 1학년의 작문 강의를 맡아하셨는데, 도통 웃질 않으셔서 딱딱한 인상이 더욱 차갑게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수업에는 진심을 다하시는 게 느껴져서 나는 그 강의 시간이 퍽 마음에 들었다. 또 그 강사님을 통해 사색록 쓰는 걸 배우게 되었고, 나는 곧 그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루는 강사님이 추천하는 책 리스트가 담긴 유인물이 전 학생들의 손에 들렸다. 그 안에서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인 『신과 나눈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리하여 너희 대부분은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습관의 피조물, 다른 사람이 창조한 피조물이 되고 만다.” 그 구절을 접한 순간, 내 안의 미묘한 분열이 독촉장을 날리는 것 같았다.
부탁하면 들어줘야 하기에 매우 힘이 센 신,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신…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제일 먼저 부르짖던 나의 하나님. 신은 내 기도를 거의 다 들어주시지만 간혹 들어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설령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건 분명 그분의 더 큰 계획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믿음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믿음이 단순히 ‘타인이 정해 놓은 관념(종교를 포함하여)‘을 받아들인 거라면? 그런 의구심이 일어나자 비로소 내 마음이 보낸 불편함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언제 신을 찾을까? 내 경우에는 보통 ‘힘든 일이 있을 때’ 신을 찾았다. 하지만 인생은 힘든 순간만 있지 않았다.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슬펐다. 또 때로는 우아했고, 때로는 치졸했다. 때로는 푸른 하늘에도 감동했고, 때로는 발에 치이는 낙엽들에 분노했다. 제한된 관계성의 관점으로는 더 넓은 신, 더 확장된 우주, 그리고 더 다양한 인생, 더 열린 사랑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모든 순간에서 신을 찾고 싶었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이다... 너희의 ‘가장 고귀한 생각’, ‘가장 명확한 말’, ‘가장 강력한 느낌’은 항상 내 것이다.” 그건 답을 듣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을까? 그리고 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려왔다. “나는 모두에게 말하고 언제나 말한다. 문제는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내 말을 귀담아듣는 가다.” 다만 내가 진심으로 들을 준비만 되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