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루 종일 우울한가? 헉, 나 정말 내가 죽고 싶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매일 하진 않는데? 다들 조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살잖아. 내가 게으른 건데 괜히 우울증으로 핑계를 대고 싶어서 과장해서 답변하는 거 아냐?'
이 문항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의 나는 실제로 우울했고,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내가 우울하지 않을 때에는 별로 고민 없이 '해당되지 않음'이나 '가끔 그렇다'에 답변했다. 문항을 다시 읽어 볼 필요도 없을 만큼 집중력도 좋았다.
우리 몸은 착실하다. 목감기가 오면 기침을 해서 편도선이 부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아프다는 것을 계속 표출하기 위해 이상 반응을 보인다. 당신이 우울증 자가검진 테스트에 '해당되지 않음' 또는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에 체크할 때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또한 정신적 반응이다. 거짓말을 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나 우울증인가? 우울증이면 엄청 심각한 건가? 아냐, 심각한 우울증은 자해를 해야 되잖아? 나는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가지도 않았고 불면증도 없으니까 사실 우울증 아닌 것 아냐? 이 테스트 틀린 것 같은데? 병원 갈 필요 없을지도? 정신력으로 나을 수 있을지도? 나 그냥 귀차니즘일지도?'라는 분을 위해 처음부터 말해보겠다.
우울증은 귀찮음의 얼굴을 하고 온다.
귀찮아서 아침에 늘 하던 스트레칭을 안 하고 잠을 더 자기 시작한다. 잠을 더 자서 지각하고, 지각해서 더 사람이 많은 출근길에 낑기게 된다.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고,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출근한다. 일하기가 귀찮다. 평소보다 더 일하기 싫다. 어떻게든 퇴근까지 버틴다. 집에 돌아오니 진이 빠진다. 빨래를 해야 하는데 귀찮다. 씻기도 귀찮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든 것이 연달아 귀찮아지고, 종국에는 살기 귀찮아진다.
그렇게
죽고싶어진다.
죽고 싶은 기분이 반복적으로 계속 든다. 그 기분이 일상에 차츰차츰 스민다. 죽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다들 조금씩 죽고싶어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야? 라고 착각하게 된다(참고로 우울증이 완화된 지금의 나는 죽고 싶은 기분이 그렇게 자주 들지 않는다).
죽고 싶은데 왜 살아야 하지?
그런 생각이 반복되던 어느 날의 아침.
출근할 수가 없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진다. 일어나기 싫다. 만사가 다 귀찮고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나 자신이 밉다. 하지만 뭔가 하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발이 안 움직인다. 일상, 평소, 땅에서 걷던 방식대로 걸을 수가 없다. 우울의 바다에 표류당한 것이다. 헤엄을 쳐야 하는데 바다에 들어온 게 처음이라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여기가 바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티기 위한 '뗏목'을 찾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닌다든지, 핸드폰을 하루 종일 들여다본다든지, 게임을 한다든지. 그나마 긍정적인 방향은 책 읽기나 그림 그리기 등일 것이다. 가장 부정적인 방향은 자해다. 어떤 방향이든, 어찌어찌 뗏목 위에서 버티다가 당신은 지금 구조 신호를 쏘아 보낸 것이다.
구글 검색창에.
<우울증> <우울증이란?> <우울증 별 것 아닌 경우> <우울증 증상>을 검색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당신은 여기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다. 정신이 쏘아 올린 구조탄은 바로 '우울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당신은 발버둥 치고 있다. 이 우울의 바다에서 구조되고자.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부디 정신과에 내원하시라. 병원에 안 가고도 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어쩌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도 있겠지. 때로 어떤 염증들은 그냥 두면 낫기도 한다. 그러나 염증을 내버려 뒀다가 썩고, 곪고, 절단할 가능성을 높이며 병을 방치하는 것보다 나은 길이 현대의학에 있다. 검사를 받아 정확한 환부를 알고, 병명을 얻고, 의사의 말을 믿고, 처방받은 약을 먹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