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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건 Aug 21. 2022

8년 2주 만에 정신과 내원을 성공하다

9일 차. 정신병원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그리고 이토록 평범하다니?

지금 나는 정신과 내원권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나도 처음에, 그러니까 알코올 의존증이 될 위험을 경고받은 직후 곧장 병원에 간 것은 아니었다. 정신과에 가고 싶은 동시에 정신과에 가는 환자가 되는 일이 두려웠다. 또한 가족의 설득이 계속되었다.


"너는 정신과에 굳이 갈 필요가 없어. 네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좀 우울하고 예민할 수도 있는 거지. 절대 병은 아니야."


내원해야 한다는 확신이 점점 사라졌다.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지도 몰라. 그래. 이 정도면 좀 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일 뿐이야. 성인이 된 후에는 자해도 안 하잖아.


그냥 살자.


그렇게 결심했을 때 내 몸에 원인 모를 통증이 생겼다. 갈비뼈에 전기충격을 가한 듯한 통증이 계속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일과 학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내원해 치료도 받아봤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몸이 아프자 괴로움이 심해졌다. 내 진료기록에 '원인불명의 흉부 통증'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원인을 알면 치료할 수 있는데 원인불명이라니. 고칠 수 없다니. 약도 줄 게 없다니 말도 안 돼. 현대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생각은 질문으로 끝났다.


그럼 나는 평생 이런 전기충격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건가?

불치병인가?


결론이 그렇게 나자, 전기충격이 올 때마다 함께 찾아오는 우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진정하기 위해 자해를 했다.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고등학생 때보다 우울증이 나아졌고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내 정신건강 악화로 인해 신체에 눈에 띄는 손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몸이 아프자마자, 조금 우울한 상황이 생기자마자 곧장 자해를 해 버린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 믿음을 되돌아보았다. 고등학생일 때의 나는 내내 상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회 마감을 맞춰야 했고, 결과 발표에 매달려야 했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우울해졌다. 입시와 미래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이 길을 가야 하는지까지 통째로 고민했다.


그러나 대학에 합격했고 입시 걱정 사라졌다. 대회에 참가할 필요도, 대회 참가에 따라오는 수상 결과에 대한 절망도 없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절망과 불안이 몇 가지 사라진 것이 사실이었다. 우울증이 대단히 호전되었다기보다는 고등학생 때처럼 심한 압박이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판단해야 맞았다.


상황이 나빠지자마자 자해를 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우울증이 낫지 않았다는 증거였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사건이 일어나고 우울해지면 자해로 해결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병원에 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인생의 대부분은 사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워놓은 계획과 달리 떨어지고 아프고 늦고 헤어진다. 도처에 우울할 사건은 널려 있다. 핵심은 사건에 따라오는 우울을 해소하는 방법에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자해라는 사건을 추가시킬 뿐이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다시 엄마를 설득했다.

역시 엄마는 내가 정신과에 가지 않기를 바랐다. 정신과에  내원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하지 못하거나 직장에서 서류를 떼어 볼까 걱정했다. 내가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주자 엄마는 허락해주었다. 여전히 정신과에 간다는 사실을 찜찜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엄마 카드를 들고 정신에 전화를 했다.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진료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듣더니 말했다.


"초진 보려면 2주 기다리셔야 해요."


나는 놀랐다. 내가 사는 작은 지역에 그렇게 많은 정신과 환자가 있고, 이미 내원하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다들 정신과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초진을 2주나 기다려야 할 정도로 환자가 많다니. 대학병원도 아니고 그냥 동네에 있는 작은 병원이라 당장 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8년이나 정신과에 내원하기를 기다렸는데 2주 더 못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나는 2주 뒤에 초진을 잡았다.  기다리는 동안 병원에 가서 무슨 말을 할지, 무슨 검사를 할지, 어떤 진단이 나올지 상상했다.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검사들을 하자고 하려나?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어쩌지. 만약 입원 치료를 권하면?


2주 뒤 나는 병원 의자에 앉아서 나의 우울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나를 때렸던 중학생 시절부터 우울감이 심하게 느껴졌으며 감정적일 때의 나를 통제하기가 어렵다고.

의사 선생님은 현재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꿈은 안 꾸는지, 집중은 잘 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질문들에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답했다.


"아침 약과 저녁 약을 줄게요. 아침에 눈 뜨고 드시고, 자기 전에 드시면 돼요. 술 하시면 당연히 안 좋고요. 정신과 약은 효과가 즉각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한두 달 보면서 약을 잘 맞춰나가 봅시다. 일주일 후에 다시 뵐게요. 일단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나는 그렇게 상담실을 나왔다. 대기실에서는 환자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창구로 갔다.


"약값이랑 진료비 합쳐서 삼만 원 결제 도와드릴게요."


나는 카드를 내밀었다. 간호사는 카드를 돌려주며 약 봉투도 건네주었다. 나는 약 봉투를 받고 물었다.


"가면 되나요?"

"네. 가시면 돼요."


나는 약 봉투를 들고 나와서 핸드폰을 보았다. 여전히 낮 햇볕이 쨍했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8년 하고도 2주나 기다려서 진료를 봤는데 고작 삼십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니. 모든 것이 너무 평범했다. 증상에 관해 상담을 하고 선생님이 복약지도를 하고 약을 받고. 그게 끝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시한 한편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저녁 약을 먹고 난 뒤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두 시쯤 눈이 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 시 이전에 자 본 일이 거의 없었다.


분명히 즉각적인 효과는 없을 거라고 했는데 어째서일까?


나는 눈을 감았다. 졸음이 찾아왔다. 분명히 약의 효과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약의 효과보다도, 해방감과 개운함이 나를 잠들게 했다. 그렇다. 그날 나는 무언가 해결되었다고 느꼈다. 솔직히 그날은 초진을 본 것일 뿐이었으므로 대단한 치료나 상담은 없었다. 따라서 엄청나게 우울감이 개선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의 우울에 F32라는 질병코드와 우울에피소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만으로도 개운해졌다.


내원했어야 하는 병이 맞았음을, 내가 과민반응한 게 아니었음을, 힘들었던 것이 정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한편 내 병에 따라오는 의사 선생님의 심상한 반응과 일반적인 알약 모양도 나를 안심시켰다.


이름 모를 병이 아니야.

질병코드가 붙을 정도로 흔한 병이야.

그리고 약을 줬어.

약으로 해결되는 병이라는 뜻이야.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잠을 잤다. 가위도 꿈도 없었다. 아주 평범하고 편안한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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