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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건 Aug 28. 2022

우울증 약을 먹은 뒤 멍하고 간지러워요

10일 차. 정신과 약의 부작용과 효과

어느 날 허벅지에 작은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났다. 그리고 허벅지와 무릎이 무척 간지러워졌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 내 생활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것이었다.


우울증 약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었다.


부작용은 이 간지러움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시간, 멍한 증상이 생겼다. 원래는 언제나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머물고 있었다. 그 생각들이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정돈되었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소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퍼뜩 겁이 났다.


앞으로 소재를 계속 생각해내지 못한다면? 그럼 작가가 된다는 꿈은 이룰 수 없는 것 아니야?

게다가 이 간지러움은 심각한 부작용 아닐까? 봐. 어제보다 더 빨갛게 변했어. 두드러기가 계속 번지면 어떡하지?


우울하지 않으려고 먹은 약인데 걱정만 불러일으키고 있잖아.

그만 먹을까?


나는 간지럼증에 극심한 공포가 생겨 피부과와 다른 정신과 내원해 보았다. 피부과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먹은 약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온 것 같으니 처방한 의사에게 가서 약에 대해 상담해보라고 했다.


내가 내원한 다른 정신과는, 자신과 잘 맞는 병원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게 직접 경험시켜 주었다. 그 의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증상을 듣다가 한 마디 했다.


"몰라요. 기다려보세요."


이 답변은 지식인에서도 내공조차 못 받는다. 참고로 나는 진료비까지 내고 나왔다.


결론적으로는 약을 처방해줬던 정신과와 상담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원 예약 날짜까지 버텼다. 마침내 상담실에 앉은 나는 침울하게 털어놓았다. 간지럼증두드러기와 멍함이 생겨서 힘들었고, 더 이상 약을 복용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선생님은 간지러움이 생긴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 약의 부작용으로 간지럼증이 나타난 사례가 이전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에게만 무언가 이상한 증상이 생긴 건가? 라는 두려움에 무릎을 더 세게 긁으며 물었다.


"그럼 어떡하죠?"


선생님은 답했다.


"약을 바꿔보면 되죠. 만약 이번에도 간지러우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전화하세요. 힘드시잖아요."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전화해도 되는 거였구나. 이렇게 쉬운 거였어? 라고 생각이 드는 한편 여전히 무서웠다.


"만약 지금 먹는 약을 끊었는데도 간지러우면요? 부작용이 지속될 가능성은 없나요?"


"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약을 끊으면 사라져요. 길어봤자 일주일 정도 증상이 더 있다가 사라질 거예요. 만약 지속적으로 간지럼증이 있다면 약이 아 다른 무언가 때문일 거예요. 지금은 약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 약은 빼고 다른 약으로 바꿔서 처방해 볼게요."


선생님은 내 간지럼증을 기록해두고는 말했다.


"그런데 멍한 건 부작용이 아니에요. 효과예요.우울증이 낫고 있다는 뜻이죠. 생각이 많아서 직업적으로 좋은 점도 있겠죠. 하지만 생각이 없어지면 불필요한 걱정을 덜어낼 수 있어요. 걱정과 망설임이 사라지니 실행력도 더 올라가고요. 멍해지는 건 어떤 약을 먹어도 멍해질 거예요. 그게 우울증이 완화되는 과정이니까요."


나는 새 약을 받아 왔다. 약을 바꾼 지 딱 하루 만에 간지럼증과 두드러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멍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늘 '생각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언제나 입안에 껌이 있었는데 갑자기 껌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허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게 부작용이 아니란 사실은 다행이었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는 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결국은 선생님 말이 맞았다. 항상 어떤 일이든 생각과 걱정이 앞섰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해보자. 하고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작품 활동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글을 쓸 때 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생각이 불쑥 들지 않으니 오히려 더 편했다.


약을 복용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났다. 더 이상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아주 편했다. 나는 휴학을 끝내고 복학해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매달 한 번씩 병원 가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괜찮아졌고, 6개월이나 이 상태를 유지했으니 이제 나은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이 정신건강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약을 끊었다. 의사와 상담하지 않고 말이다. 약 부작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약 복용을 중단할 때에도 상담이 필요했을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건이 닥쳤을 때 나는 또다시 우울해졌다. 내 멋대로 약을 끊은 일은 '생각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 상태였는지, 내게 확실하게 경험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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