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나는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숨을 쉴 수 없었으며 시야가 좁아지고 운전을 계속하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2018년 여름에도 공황발작으로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내 마음은 항상 불안했고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대신, 그 이듬해 작은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다시는 공황발작이나 자살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과호흡이나 심하지 않은 불안감 같은 신호를 무시하며 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9년 11월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내가 몸에서 보내는 경고를 외면했듯이 전 세계 국가들은 그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을 단순한 독감으로 믿었다. 결국, 내가 두 번째 공황발작으로 전문의의 도움을 받기 시작할 때 즈음에는 전 세계는 공황상태였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집에 갇힌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대부분이 멈추었다. 내게는 정원이 있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들이 있었다. 처음 먹는 정신과 약에 취해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정원에서 꽃을 키우는 시간적인 자유도 있었다.
나의 주치의는 짧게는 4개월, 길어도 6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 상태가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치료가 끝난 후에 재발할 가능성도 있지만 다시 치료를 받으면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용기를 주었다. 대신 일상생활 외의 스트레스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치료를 시작하고부터 내 생활에는 변화가 생겼다. 일주일에 세 번씩 서울을 오가던 일은 집에서 페이스타임을 통해 해결했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많이 하는 분위기여서 적응하기 쉬웠다. 마스크를 쓰면 과호흡이 심해져서 나가기가 더 힘들었다. 필요한 물건은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식료품은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마트에 들러 사 왔다. 꼭 집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남편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주말에 움직였다.
아파트에 비해 적은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 내 산책은 자유로웠다. 나는 일어날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나 화단에 물을 주고 이웃에게 잡초와 화초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이웃들과 화원에 가서 예쁜 꽃을 한아름씩 사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잔디도 처음으로 깔아 보았다. 나의 취향에 맞추어 화단 경계도 바꾸었다. 인터넷으로 전지 하는 방법을 찾아 연구한 후, 웃자란 나뭇가지도 잘랐다. 약을 먹어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날은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정원에 있다 보니 피부가 까맣게 그을렸다. 처음 보는 나무와 사초를 다루다가 팔과 다리에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기도 했다. 머리카락은 탈색이 되고 얼굴에는 기미가 끼었다. 집에는 정원관리에 필요한 물품들이 쌓여갔다. 이렇게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일상생활로 빨리 되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꽃이 모두 시드는 겨울이 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법에 익숙해졌다. 나는 여전히 10킬로미터 이상 차를 탈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면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이웃들이 차를 타고 나갈 때 쉽게 따라나설 수도 없었다. 정원에는 할 일이 없었고 나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의사가 약속한 6개월은 이미 지났고 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그제야 와닿았다. 나는 무기력해졌다.
작년 초에는 운전도 하지 못하는데 세워두기만 하는 차를 팔았다. 그 후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은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원일에 더욱 몰두했다. 해가 지고 나면 우울증에 대한 책을 읽으며 내 병을 공부했다. 미친 듯이 땅을 파는 나를 보며 이웃들은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이웃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이 눈에 그려지지 않으면 마음이 매우 불안해서 차뒷자리에 앉아 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같이 앉은 이웃의 어깨에 기대기도 했다. 식당에서도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냥 따라가고 싶었을 뿐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모습에 함께 간 사람들은 불편해 보였다. 대놓고 왜 따라온 거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내 모습은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았다. 모두 코로나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나는 시대의 흐름도 내 병의 진짜 모습도 바로 볼 수 없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숨을 곳은 정원과 책뿐이었다.
나의 정원은 나날이 아름다워졌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정원의 모습이 서서히 현실로 나타났다. 내가 가진 지식과 재화와 감정은 모두 정원에 녹아들었다. 정원의 하루하루를 남기기 위해 시작한 SNS를 보고 놀러 오고 싶다는 사람도 생겼다. 한껏 쪼그라든 생활 반경을 다른 식으로 넓히기로 했다. 방문 요청이 오면 무조건 초대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초라한 정원에 실망을 하고 간 사람도 있었고, 아기자기하다며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자주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다. 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되었다. 잡지사에서 정원 촬영 의뢰가 왔을 때도 승낙했다. 유튜브에 정원 소개를 하고 싶다는 제안도 고맙게 받아들였다. 사람들의 방문은 그들의 삶을 나의 세상으로 가져왔다. 혼자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여전히 한정적이었지만 나의 생활은 풍부해졌고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률은 점점 높아졌지고 치명률은 낮아졌다. 주위에 감염된 사람이 계속 늘어갔다. 증상이 있으면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나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서로 증상에 대해 정보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병자가 죄인이 되는 분위기였으나 이제는 언제든지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제 두려움을 버리고 바이러스와 공존하게 되었다.
나는 약 복용량을 늘였다. 약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상생활을 되찾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온전한 개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차도 샀다. 처음 가는 곳은 남편이나 친구들의 차를 타고 길을 익혔다. 혼자 운전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서서히 넓혔다. 이제는 병원도 혼자 운전해서 간다. 조금 먼 거리를 가야 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비상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예전의 생활을 되찾기 전까지는 약을 끊을 생각을 버렸다.
지난달 진료를 받을 때 의사가 말했다.
“이제는, 지금도 잘하고 계시지만, 우울증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셔야 합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잘 해내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 달 뒤에 뵈어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해 내 물리적인 세상은 여전히 좁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직접 이동할 수 있는 곳까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책을 통해, 그림과 글쓰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나의 세계를 넓힐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의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