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한 달 전쯤, 저녁을 먹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이웃집 언니에게서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한 살 반쯤 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고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언니 집으로 달려갔다.
거실 유리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크림색 푸들이 언니네 부부 사이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내 얼굴을 핥았다. 눈빛이 착했다. 처음 보는 사람 무릎에 앉는 걸 보니 사회성도 좋아 보였다.
“우리는 강아지를 처음 키워서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
“착하네. 얼굴도 예쁘고. 우리 집 콩이랑 크기도 비슷해 보여. 이름은 뭐야?”
“가을에 데려와서 가을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보통 개들은 앞발을 만지면 싫어한다, 사람들이 손톱을 아주 짧게 잘랐을 때와 같은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앞발이건 뒷발이건 어딜 만져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온몸을 만져가며 피부병이 있나 살피는 동안에도 그저 좋다며 내 턱을 핥았다.
목을 살살 긁어주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맘에 걸렸던 목줄을 풀었다. 순간 가을이 눈빛이 갑자기 바뀌더니 오른손을 물었다. 중간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물어보지도 않고 풀고 보니 언니네 부부 얼굴에 긴장감이 보였다. 원래 키우던 주인이 군대를 가는 바람에 할머니가 맡아 키우셨는데 왕복 8차선 도로 앞에 계속 묶어 뒀다고 했다. 목줄을 만지면 다시 묶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밤산책을 나갈 것도 아니라고 하길래 목줄을 다시 채우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까지 세 식구가 가을이 목줄을 하려다 실패했다며 좀 도와 달라고 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 얼른 나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콩이도 데리고 갔다.
언니네 집에 도착해 보니 목장갑과 고무장갑이 준비되어 있었다. 두 부부는 조금 지쳐 보였다. 가을이는 전날처럼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콩이는 평소 강아지를 보면 피하기 바쁘다. 그런데 가을이를 피하지 않고 천천히 냄새를 맡았다. 가을이 배변패드와 방석에 마킹도 했다. 자기보다 더 순한 강아지를 만났을 때 하는 행동이다. 계속 집안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목줄에 익숙해지라고 목줄을 장난감 삼아 놀아주었다. 코앞에서 살살 흔들다가 던져주면 가을이가 얼른 물어서 내 손에 갖다 주었다. 콩이는 언제나 그렇듯 옆에서 구경만 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아 언니네 부부와 강아지 둘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장갑을 끼고 잡으면 가을이가 긴장할 것 같아 맨손으로 목줄을 해주려다가 오른손을 심하게 물렸다. 다리 사이에 몸통을 끼고 다시 시도했는데 얼굴을 돌려 왼손 둘째 손가락을 콱 물었다. 손톱이 깨져서 피가 흘러내리고 손가락 끝에 피가 고여 까매졌다.
어쩔 수 없이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까지 낀 후 다시 시도했다. 으르렁거리며 반항하는 모습이 불쌍해 심하게 누를 수가 없었다. 결국 언니네 아저씨와 둘이서 잡고 겨우 목줄을 했다. 그 사이 계속 손을 콱콱 물어대는 바람에 장갑은 다 찢어지고 양손에 물린 자국이 가득했다.
겨우겨우 목줄에 리쉬까지 채우고 바로 산책을 나갔다. 목줄을 안 하겠다고 버틸 때와는 달리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산책 매너도 좋았다. 하지만 콩이는 겁을 먹었는지 가을이와 살짝 거리를 두며 걸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톱은 끝이 깨진 거라 빠질 것 같지 않았다. 작년에 파상풍 주사도 맞았고 관리받던 강아지에게 물린 거라 그냥 두어도 나을 것 같았다. 문제는 손가락 끝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고인 부분이 붓기 시작했다. 손톱 깨질 때 같이 찢어졌으면 괜찮았을 텐데. 결국 오후에 병원에 갔다. 바늘로 찔러 피를 빼려고 했지만 이미 굳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전체가 딱지처럼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했다. 손톱도 빠질 것 같지 않다며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언니에게서 괜찮냐는 연락이 계속 왔다. 피도 멈추었고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 실수로 생긴 일이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병원에서도 괜찮다고 했다고 안심을 시켰다.
그 다음날 언니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톱은 괜찮아? 내가 어제 널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너무 미안해. 우리끼리 했어야 했는데. 가을이는 어제저녁에 돌려보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키우기엔 무리인 것 같아서. 으르렁대는 게 점점 심해지더라고. 그런데 하룻밤 사이 정이 들었는지 보고 싶다.”
내 손가락은 괜찮은데, 나 아픈 건 상관없는데, 조금 더 지켜봐 주지 그랬어, 여러 가지 말이 나오려다 쏙 들어갔다. 경험이 없는 집에서 키우기 힘들 수 있겠다 이해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 데리고 올까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콩이도 어릴 때 버려졌던 터라 예민하고 남편은 동물도 식물도 좋아하지 않지만 나 때문에 참고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친 부분은 매일 소독을 하고 붕대를 다시 감았다. 약도 잘 먹었다. 동네 병원에 가서 항생제 주사도 맞았다. 그래도 통증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야!”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손톱이 붙박이장 문에 걸렸다. 찌익하는 느낌이 나더니 확 젖혀졌다. 다행히 뿌리까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빠질 것 같았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남편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러게 다 자랄 때까지 꽉 묶어두라고 했잖아!”
눈물이 났다. 얼른 밴드를 찾아 손톱을 고정했다. 가을이는 오늘도 왕복 8차선 도로 앞에 묶여 있을까. 꽉 묶인 손끝이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