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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Jun 03. 2021

하늘이 하얀 날

내게 하늘은 하얗거나 파랗다

‘어, 오늘은 맑댔는데...’


잠에서 깨면 바로 하늘이 보인다.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게 나무 블라인드 방향을 항상 하늘 쪽으로 돌려놓고 잔다. 어제 확인한 일기예보에서 분명 맑은 날씨라고 했기 때문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얀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흰색이었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블라인드인지 한참 쳐다보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임이 있는 날인데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나갈 준비를 해야지.’

우선 침대를 정리했다. 그러고도 안방에서 조금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임박해서야 거실로 나왔다. 정원 쪽으로 나갈  있는 문과 양쪽  채광창에 설치된 하얀색 허니콤 블라인드 색상과 높은 반달 으로 보이는 하늘색이 같았다.

썬룸으로 가서 옆집 쪽을 향한 창을 활짝 열고 방충망을 닫았다. 대각선 방향 폴딩도어도 활짝 열고 방충망을 닫았다. 내가 없는 사이 식물들이 더울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바깥으로 나가는 문에 달아 둔 허니콤 블라인드는 걷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냉동고에서 치즈 베이글을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50초 후면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기다리면서 거실과 부엌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남편은 쓰레기를 앉아 있던 자리에 고대로 두는 버릇이 있다.

빵을 꺼내 물고 거실 창을 향해 쪼그리고 앉았다. 우리 집은 부엌이 거실보다 계단 한 칸만큼 더 높다. 단차로 생긴 경계에 앉아서 정원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블라인드를 올리지 않은 상태라 하얀 벽을 보는 기분이었다. 반달 창으로 보이는 하늘과 흰 블라인드 색상이 아직도 같았다.

빵을 하나 다 먹고 썬룸에 있는 냉동고에서 또 하나를 더 꺼냈다. 무슨 빵이었더라. 그냥 우물우물 씹으며 같은 자리에 앉아 하얀 하늘과 하얀 블라인드만 하염없이 보았다. 두 개나 먹어서 배는 부른데 또 하나를 꺼내 왔다. 세 번째는 초콜릿이 잔뜩 들어간 휘낭시에를 골랐다. 녹이지 않고 바로 먹는 게 맛있다.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네 입에 나누어 먹었다.


‘왜 블라인드를 못 올리지?’


2층으로 올라갔다. 반달 창으로 목련 나무가 슬쩍 보였다.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 방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문에는 커튼이 없다. 빛이 잘 들어오라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라고 일부러 달지 않았다. 그 문에서 정원을 보는 것은 괜찮았다. 꼭 내 정원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블라인드를 올리지 않아서 어두웠다. 화분의 식물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하며 제일 좋아하는 보라색 블라인드를 올렸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도 살짝 열었다. 창밖으로 썬룸 지붕과 하얀 꽃이 잔뜩 달린 산딸나무가 보였다.

‘여기선 괜찮은데...’


다시 일 층으로 내려 가 같은 자리에 앉아서 반달 창에 보이는 하얀 하늘과 같은 색의 블라인드를 보았다. 카톡 알람이 울렸다.

‘커피 마시러 올래요?’

아, 블라인드를 올리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였다.

‘저 오늘 모임 있어서 지금 나갈 준비 중이에요. 다음에 마시러 갈게요.’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거실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하지 않았었다. 정원이 그대로 보이는 게 좋았다. 아무리 기분이 가라앉아 있어도 거실까지만 나오면 정원을 볼 수 있었고 그러면 움직일 힘이 생길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지난겨울에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이웃분들이 남편 있을 때 들르기 부담스럽다며 거실 창을 가리면 안 되냐고 했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썬룸으로 바로 들어가려면 거실 창 앞을 지나쳐야 하는데 창 너머로 소파에 누워 있는 남편 모습이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펜스를 따라 심어져 있던 사철나무를 많이 베어낸 탓에 담장 밖에서도 티브이 화면을 볼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별 상관없었지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설치한 블라인드였다. 빛은 적당히 통과하지만, 시선은 차단되는지라 예전에는 안방에서만 나오면 되었는데 이제는 거실에서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병은 생각하지도 않고 남의 편의만 봐준 꼴이 되었다. 남편이 있을 때는 집에 사람이 자주 오지도 않는데.


얼른 씻고 예쁜 옷을 골라 입었다. 택시를 불렀다. 생각보다 택시가 일찍 도착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을 가방에 넣고 그제야 블라인드를 올렸다. 내 예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하얀 날에도 세상의 모든 색을 품고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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