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3
제천으로 힐링 여행
청풍호에서 카약을 타면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제천 10경에 속하는 옥순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오늘도 일을 하다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다. 쳇바퀴 같은 삶이 반복된다. 컴퓨터, 인터넷 보급으로 쉴새없이 제공되는 정보를 얻고 일을 처리해야 한다. ‘여유’란 단어는 구석에 처박혀 있는 국어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처지다. 삶의 속도를 좀 늦추자. 좀 느리게 주위를 돌아보기엔 제천이 제격이다. 충북 제천은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봐야 예쁘다. 나지막한 산기슭에 있는 비탈진 땅을 말하는 자드락길이 이어져 있다. 신록이 드리운 산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산만 있는 곳이 아니다. 카누와 카약을 타고 호수 가운데 편히 앉아 청풍호를 지천에서 즐길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깊은 산세에 나오는 각종 약초들로 만든 음식들이 기다린다. 몸과 마음은 물론 입까지 흡족해진다. 힐링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측백나무숲에서 몸과 마음의 힐링을
충북 제천 수산면은 2012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자연과 공존하면서 지역 자연환경의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취지로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돼 한국에는 11개 지역이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그중 하나인 수산면은 산과 호수, 들판에서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수산면 수산리의 측백나무 군락지는 4000여그루의 측백나무가 모여 있는 산길이다. 대구, 경북 영양 등에 측백나무가 있지만, 이처럼 모여 있는 군락지는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측백나무는 잎이 옆으로 자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나무로 잎과 열매가 효능이 많아 ‘신선이 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중국 진나라의 한 궁녀가 측백나무 잎을 먹고 200년 넘게 살았다는 얘기와, 한 선인이 측백나무 잎과 열매를 먹고 신선이 됐다는 얘기 등이 전해 내려온다. 또 측백나무는 무덤 속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죽이는 힘이 있어 묘지 옆에 심기도 한다. 그 외에도 불면증, 신경쇠약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충북 제천 측백나무 숲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빽빽한 측백나무숲에서 벗어나 탁 트인 곳에서 만나는 바람의 ‘맛’이 한동안 전망대에 머물게 한다.
이런 측백나무로 뒤덮인 숲길을 따라 20여분 정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측백나무 아래엔 명주잠자리의 유충 개미귀신들이 만든 함정이 곳곳에 있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전망대를 만난다. 아래로 펼쳐진 논과 밭, 산봉우리들의 풍경도 좋지만 무엇보다 바람이 참 좋다. 빽빽한 측백나무숲에서 벗어나 탁 트인 곳에서 만나는 바람의 ‘맛’은 한동안 발을 머물게 한다.
청풍호에서 여행객들이 카약을 타고 있다.
◆온몸으로 느끼는 청풍호
청풍호를 즐기려면 대표적인 방법이 제천 청풍나루에서 단양 장회나루를 운행하는 유람선이다. 하지만 유람선 안에선 노래가 끊이지 않고 여행객이 북적인다. 조용히 청풍호의 경치를 느끼려면 카누와 카약만한 게 없다. 옥순대교 남단에 있는 ‘청풍호 카약·카누 체험장’에서 출발한다. 배가 뒤집힐 것을 걱정하는데 그것은 유속이 빠른 계곡에서나 그렇다. 청풍호는 호수다. 초보자도 전진과 후진 등 노젓는 방법만 배우면 충분히 탈 수 있다. 전문가들도 동행한다.
청풍호에서 카약을 타는 여행객들. 청풍호에서 카약을 타면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제천 10경에 지정된 옥순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체험장을 출발해 10여분 쉬엄쉬엄 노를 젓다 보면 청풍호의 절경 옥순봉에 이른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옥순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물이 잔잔하다 보니 딱히 물에 젖을 일이 없지만, 유람선과 모터보트 등이 지나가면서 만드는 너울에 물세례를 맞기도 한다.
제천 수산면의 국궁장을 찾은 여행객들이 활쏘기 체험을 하고 있다.
활시위를 당겨 날린 화살이 과녁에 맞았을 때의 쾌감은 민족의 고유 무예인 국궁에서만 느낄 수 있다.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사격과는 맞혔을 때 느낌이 다르다. 과녁을 맞지 않았을 때 화살의 궤적을 보며 정신을 집중해 곰곰이 다음 활을 생각하는 과정을 거친다. 측백나무 숲길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전망대에서 국궁장 과녁 등이 보인다.
선비 박달과 이를 기다리던 금봉의 사랑 얘기가 전해오는 박달재도 들러 보자. 충주와 제천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로 고개를 넘는 차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고개 아래로 터널이 생겨 박달과 금봉의 사연을 아는 이들만이 굽이굽이 고개를 올라 박달재를 찾는다.
박달재 목각공원에 있는 오백나한. 죽은 느티나무에 삼존불을 중심으로 오백나한의 얼굴이 조각돼 있다.
박달재엔 박달과 금봉이의 한풀이를 위한 목각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이보다도 한 스님이 죽은 느티나무에 새긴 오백나한이 흥미를 돋운다. 오백나한은 부처의 생전 설법을 정리하기 위해 모인 500명의 제자를 말한다. 삼존불을 중심으로 오백나한이 조각돼 있다.
약초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한 제천의 약채락 식당에서 파는 음식.
◆약초 음식으로 입도 즐거워
여행에서 먹을거리를 빼놓으면 안 된다. 제천은 무엇보다 약초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해 있다. 제천시에선 약초 관련 교육을 받고, 제천 주위의 약초를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대상으로 ‘약채락(약이 되는 음식을 즐겁게 먹는다)’ 인증을 내준다. 가람, 바우본가, 느티나무횟집 등 22곳의 약채락 인증 식당이 있다. 단순히 한정식만 생각하면 안 된다. 한정식 외에도 약초를 활용한 피자, 칼국수, 빵, 삼겹살 등 다양한 종류의 약채락 인증 식당이 있다.
제천의 대표적인 군것질거리인 ‘빨간 오뎅’
군것질 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데 제천에서는 ‘빨간 오뎅’이 유명하다. 내륙지역이어서 바다생선을 먹기 힘들다 보니 어묵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어묵도 있지만 매콤한 양념을 바른 ‘빨간 오뎅’을 파는 집들이 중앙시장 근처에 몰려 있다. 1000원에 4개여서 저렴하다. 어묵이어서 간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먹다 보면 배가 불러온다.
제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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