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

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by 매콤한 사탕

"말미잘로 하자!"

늘 궁금한 게 많은 학구적인 둘째가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 왜 말미잘은 바보, 똥개와 동급이 된 거예요?"

"알 수 없지! 지금 그게 중요해?"

짜증이 확 올라 씩씩대고 있는데 ‘문제의 녀석’이 등 뒤에서 나무위키를 읊어댔다.

“말미잘은 자포동물이래. 내가 알기론 먹는 구멍이랑 싸는 구멍이 같은 하등 동물이거든. 그러니까 ‘이런 동물 같잖은 놈!’ 같은 욕으로 쓰인다고 유추해볼 수 있지.”

“그럼, 말미잘은 하등 동물 비하 발언 아냐?”


아무래도 이 녀석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려 작당한 것 같다.

사건의 발단은 중3 첫째 아들의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금요일에 일어났다. 하필이면 그 주 화요일에 남편의 발목 인대가 뚝 끊어졌다. 며칠 동안 발이 퉁퉁 부어서 잘 걷지도 못하면서 남편은 별거 아니라며 큰소리를 탕탕 쳤다. 내가 못 살아. 이건 정말 아들을 넷 키우는 기분이다. 나는 괜찮다는 남편을 어르고 달래서 겨우 정형외과로 보냈다. 한 시간 후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입원 소식을 전해 왔다.


“인대가 완전히 나갔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을 걱정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매사 과하게 긍정적인 남편이 신나게 말했다. 의사 말이 인대가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잘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며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내 탄탄한 근육으로 버틴 거지. 이 정도론 절대 스포츠맨의 투지를 끊을 수 없다 이거야”


남편의 실없는 농담에 속이 뒤집히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나는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수술 일정을 잡았다. 남편은 그 주말이 지나 퇴원하기로 했다. 남편이 없는 토요일 아침, 근무인 나는 바쁘게 출근 준비를 했다. 부지런히 아이들이 먹을 밥을 챙겨 놓고,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이 밀리든 말든 쿠션을 얼굴에 격하게 문지르는데 평소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는 법을 모르는 녀석이 화장대 거울 속에 불쑥 나타나더니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어머니, 컴퓨터 암호 입력은 해주시고, 가셔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데?”

“기말고사 공부해야죠.”

“컴퓨터 없이 안돼?”

“당연하죠. 인강 보고, 요점정리 하고”

“요점정리부터 해. 인강은 엄마 오면 보고.”

“컴퓨터로 해야 하는데요.”

“노트에 쓰면서 공부해.”

“손 아파요. 오래 걸리고.”

“말이 되냐? 학생이 노트필기를 못 해?”

“요즘 누가 손으로 써요. 수업도 다 컴퓨터로 하는데.”

“내가 널 믿을 수 있겠니? 게임 안 할 자신 있어?”

“그럼요. 어머니 믿어주세요.”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 천하의 사기꾼 같은 놈.


“못 믿겠는데”

“어머니,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아빠 입원하시고 엄마 힘드신데 제가 동생들 점심 챙겨주고 청소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청소는 안 해도 되니까 애들 좀 챙겨주면 돼. 공부하고! 꼭!”

“그럼, 암호입력 해주시는 거죠?”

“알았어. 컴퓨터 켜놔. 해주고 갈게.”


그때, 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옛 격언을 상기해야 했다. 그러나 인대가 나가 집 나간 아픈 남편을 둔 아들 셋 워킹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유일했다. 그것은 바로, 사춘기의 절정에 있는 중3 첫째 아들, 그 악마 같은 녀석의 말을 온전히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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