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빚 탕감은 가능한가

탕감은 구제인가, 보상의 역전인가

by 머스

"정책의 취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정부는 최근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약 22조 원 규모의 재정을 들여, 123만 명의 장기 연체 채무를 정리하기로 했다. 대상은 5천만 원 이하의 채무 중 7년 이상 연체된 계좌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채권이 중심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장부에 쓰인 숫자일 뿐인 채권을 끝까지 쫓아가는 건 형평에 맞지 않다”며, 국가가 사회적 약자의 회복을 돕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구제의 취지는 분명하다. 코로나19 이후 자영업 붕괴와 고금리로 인한 채무 불이행 증가, 소득 기반이 취약한 계층의 금융 고립은 구조적인 문제다.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지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정책 발표 직후, 지금까지 빚을 성실히 갚아온 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연체 없이 상환 중인 저소득 채무자는 약 361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구제 대상이 아니다. 절박한 형편에서도 빚을 갚아온 이들에겐, “우리는 왜 제외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장기 연체자처럼 버틴 이들이 아니라, 매달 갚아온 이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형평성의 결여다. 정부는 성실 상환자에 대한 별도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반복되는 탕감, 그리고 의지에 근거한 회복 제도"

이번 조치는 ‘배드뱅크(Bad Bank)’ 방식을 따른다. 금융기관이 회수하지 못한 부실채권을 정부나 공공기관이 매입해 정리하는 방식으로, 2003년 카드대란 당시에도 활용된 바 있다. 추심을 막고 신용 회복을 유도하는 효과는 있지만, 반복되면 “시간이 지나면 탕감된다”는 신호를 남길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새출발기금과 국민행복기금 등 유사한 조치가 이어졌고, “버티는 게 상책”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이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유발한다. 채무자는 상환 동기를 잃고, 금융기관은 금리를 인상해 리스크를 보전하며, 부담은 결국 성실한 채무자에게 돌아간다.


이와 달리, 개인회생 제도는 회복을 위한 ‘조건 있는 제도’다. 일정한 소득이 있는 채무자가 법원 조정을 받아 3년(예외적으로 5년)간 수입 일부를 상환하면, 남은 채무를 면책받는 방식이다. 핵심은 ‘청산가치 보장’. 보유 자산을 팔아 갚는 것보다 회생 기간 동안 더 많이 상환해야 면책이 가능하다. 급여·영업소득자라면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도 신청할 수 있으며, 무담보 채무 10억 원, 담보부 채무 15억 원 이하가 기준이다. 개인회생은 단순한 도움이라기보다, 제도화된 재기 기회에 가깝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2022년 9만 건에서 2024년 13만 건 가까이로 급증했지만, 중도 포기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제도적 기회를 얻었어도 생활 습관이나 소비 태도를 바꾸지 못하면 실패한다. 회생 절차는 결국 채무자의 ‘의지와 실행’이 있어야만 작동하는 구조다. 제도의 본질은 탕감이 아니라 ‘조건부 회복’에 있다.




"구제가 아니라 회복이어야 한다"

정부의 선의는 존중할 만하다. 사회적 약자의 재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국가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구제가 정당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설계와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누구를 도울 것인지, 왜 그 대상인지, 그리고 그 결정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지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 없이는 제도는 오히려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반복된 탕감이 성실함보다 포기를 보상하는 구조로 인식된다면, 회복은 더디고, 불신은 깊어진다.


모든 구제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구제는 설계에서 신뢰를 얻고, 기준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탕감은 때때로 필요하지만, 그 사다리가 성실함을 짓밟는 구조가 되어선 안 된다. 회복의 제도는 회피보다 의지를 조건으로 삼아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공의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