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의 이름으로 설계된 시장

고령층 창업, 선택인가 생존인가

by 머스

최근 들어, 고령층의 자영업 진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처음에는 낭만적인 창업 사례처럼 다뤄지지만,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생계의 마지막 수단에 가깝다. 왜 노년은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가게 하나쯤’은 진짜 선택이었을까.


한때 “은퇴 후 가게 하나쯤”은 삶의 여백을 채우는 따뜻한 상상이었다. 아담한 찻집이나 구멍가게를 열고, 햇살이 드는 유리창 너머로 하루를 음미하는 노년의 장면. 그러나 그 장면은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아니라 생존의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자영업은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었다. 특히 고령층에게는 그렇다.


그들의 창업은 자유의지가 아니다. 숫자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이는 절반(51.2%) 남짓이며, 그 월평균 수령액은 62만 원에 그친다. 기초연금까지 더해도 약 94만 원. 1인 가구 기준 생계에 필요한 최소 금액인 중위소득 60%(약 133만 원)엔 한참 못 미친다. 연금은 생계를 뒷받침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은퇴 후의 노동시장 문은 좀처럼 다시 열리지 않는다. 경력은 무시되고, 선택지는 시간제·단기·노무직 일자리뿐.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근무 기간 3개월”이라는 채용 공고를 마주한 노인은 결국 ‘내 일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가게 하나쯤’의 낭만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이 진입하는 업종은 대개 음식점, 도소매, 숙박업 같은 생계형 업종이다. 진입은 쉽지만, 지속은 어렵다. 서울 기준 외식업의 3년 생존율은 43%. 전국 평균으로 봐도 자영업의 절반 이상이 3년을 버티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장사지만, 실상은 버티기의 연속이다. 게다가 창업 비용은 대부분 대출로 조달되며, 담보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은 자연히 고금리 비은행권으로 몰린다. 실제로 60대 이상 개인사업자의 다중채무자 수는 전 연령 중 유일하게 늘고 있으며, 이들의 연체율은 평균보다 1.7배 높다.


결국 실패는 빈곤으로, 빈곤은 공공 의존으로 이어진다. 폐업한 고령층은 기초생활보장이나 긴급복지제도의 보호막을 찾지만, 그 보호막은 얇고, 신청의 문턱은 높다. 사회는 민간의 리스크를 뒤늦게 공공이 떠안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개인의 파산이 시장 전반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이다.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유사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과잉 진입하면서 경쟁은 무한히 치열해진다. 영세 상인의 마진은 줄고, 지역 상권의 생존력도 약화된다. ‘나도 어렵다’는 말은 이제 상점 간의 인사가 되었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왜 공공은 개입하지 않는가. 실은 개입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체 생계 수단이 차단되어 있고, 창업 결정은 구조적 압박의 산물이며, 실패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공공 개입의 3대 정당성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그럼에도 개입이 미흡한 것은, 여전히 자영업을 자율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선택지를 늘리는 공공이다. 진입 전 수익성 진단과 시장 경쟁도 평가를 돕는 스크리닝 체계, 창업 시뮬레이션과 수익성 워크숍이 결합된 실전형 창업교육, ‘실버인재센터’처럼 지역 기반의 소규모 일자리 매칭 플랫폼, 그리고 폐업 이후 채무 조정과 심리 상담까지 아우르는 복귀 경로의 설계.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가게 하나쯤”이라는 말을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이 여유가 아니라 유일한 출구가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실패했다. 선택지를 지우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제는 묻지 말고, 설계해야 한다. 노년의 노동이 절박함이 아닌 존엄함으로 이어지도록. 그것이야말로 진짜 ‘제2의 인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