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업 정책의 급선회

감세인가, 구조 전환인가

by 머스

2025년 7월 4일, 미국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이하 OBBBA)’을 발효했다. 감세를 명분으로 도입된 이 법안은 법인세율 조정과 투자세 공제 구조 개편을 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산업 보조금 체계를 대대적으로 철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면은 조세개편이지만, 본질은 산업정책의 궤도 전환이다.




IRA는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해 세액공제 중심의 인센티브 체계를 설계해왔다. 그러나 OBBBA는 이 인센티브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며, 보조금 기반 산업 육성 전략에서 시장 자율에 기반한 구조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특히 IRA 하에서 미국 진출을 결정했던 한국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에게는 정책의 전제가 흔들리는 불확실성과 맞닥뜨리게 된 상황이다.


정책 궤도의 변경은 실물경제에 즉각적인 충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기차 세액공제가 종료될 경우 한국산 전기차는 미국 시장에서 연간 약 45,828대의 수출 차질을 겪을 수 있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2024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의 약 37%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매출 손실만 약 19억 달러로 추정된다. 특히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11조 원 규모의 전기차 전용공장이 2025년 말 준공을 앞두고 있어, 세액공제 종료 시점과의 시간차는 초기 수익성 확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생산 구조의 취약성도 문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의 주요 배터리 3사는 미국 내 생산설비 대부분을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JV)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완성차 수요가 감소할 경우 배터리 발주량이 곧바로 줄어들고, 이는 공장 가동률 하락과 수익성 저하로 이어진다. 실제로 SK온은 2024년까지 5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상반기 기준 미국 내 일부 신규 투자계획을 조정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 자국 산업에도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 청정에너지협회(ACP)는 OBBBA의 영향으로 향후 10년간 텍사스 내 청정에너지 설비가 최대 77GW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으며, 전국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약 53~59% 감소하고 약 9만 개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보고서는 가구당 연간 전기요금이 480달러까지 증가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OBBBA가 단지 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산업 전반에도 구조적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전환되는 시기에는 단기 대응을 넘어 구조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기업은 보조금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이동해야 하며, 그에 따라 단기·중장기 전략 모두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과 효율성 방어가 핵심이다. 우선, IRA 체계에서 유일하게 유지되는 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Credit(AMPC)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2033년까지 적용되며, GWh당 최대 3,500만 달러 수준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고효율 생산설비 도입 및 제조단가 절감과 연계할 경우 실질적인 수익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준공 이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기 시운전, 딜러 프로모션 강화, 미출시 모델의 선제 홍보 등 유통 전략의 보완도 병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테슬라의 가격 인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보급형 EV 출시 확대 역시 시급하다. 고가 브랜드 중심의 전략만으로는 세액공제 종료 이후 북미 시장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략적 유연성과 기술 내재화가 요구된다. IRA 이후 북미가 투자의 중심지였다면, OBBBA 이후에는 정책 회수 리스크가 현실화된 지역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유럽(내연기관 판매 금지), 중동(사우디의 EV 투자 확대), 동남아(신흥 소비시장)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글로벌 재정렬이 필요하다. 동시에, HEV(하이브리드)·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제품군 강화는 전기차 전환기의 완충장치가 될 수 있다. 미국 내 PHEV 등록 대수는 2024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약 28% 증가한 바 있다. 배터리 공급망 측면에서도 합작법인 기반의 납품 구조는 수요 변화에 취약한 만큼, 팩 조립, BMS, 경량화 기술 등 자체 기술 내재화를 통해 완성형 배터리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전고체 배터리, AI 차량제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은 보조금이 사라진 이후에도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로, 전략적 R&D와 조인트벤처 설립, 특허 확보 등 미래 성장 기반 구축도 필수적이다.


산업의 구조 전환은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의 개입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전략의 기반으로 작동해야 한다. 산업은행법 개정안에 따라 조성 예정인 50조 원 규모의 전략산업기금은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정책금융, 위험보전, 채권보증이 복합된 실질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또한, 적자 기업에는 무용지물인 현재의 R&D 세액공제 방식도 현금 환급형 구조로 전환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이미 tax refund 방식으로 전환해 실질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외에도 2029년 종료 예정인 공급망 안정화기금은 현재 광물 수급에 한정되어 있는 만큼, 분리막, 전해질, 장비 등까지 범위를 넓히고 공공조달 연계 인센티브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전략기술 범위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현재는 반도체와 배터리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미국이 보조금을 철수한 영역 중 일부는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AI반도체, 고효율 설비, 콘텐츠, 수소에너지 등은 기술 확장의 여지가 있는 분야이며, 이를 중심으로 세제·R&D 지원도 재설계해야 한다.




결국 OBBBA는 단순한 조세법 개정이 아니라, 보조금 경쟁에서 구조적 자생력 경쟁으로 산업 정책의 무게 중심이 옮겨졌음을 선언하는 신호탄이다. 보호막이 사라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 자체를 다시 그려야 한다. 기업은 전략적 유연성과 기술 내재화로 대응하고, 정부는 위험 분담과 제도 설계로 뒷받침해야 한다. 생존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