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했는가?
오랫동안 가상자산은 제도권 바깥에 머물렀다. 법은 그것을 어떻게 부를지조차 정하지 않았고, 감독은 민간의 감각에 의존했다. 때로는 위기를 만들었고, 때로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2025년 7월, 미국은 그 무정형의 영역에 처음으로 선을 그었다.
2025년 7월 17일, 미국 하원이 ‘GENIUS Act’라는 이름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308표, 반대 122표. 이는 가상자산 역사상 최초로 연방 차원에서 이루어진 입법이자, 단순한 규제를 넘어선 입법이었다. 그 안에는 디지털 달러의 제도화, 미국 국채 수요의 구조화, 통화 패권의 재설계,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에 대한 견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을 명확히 ‘통화적 수단’으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은 틀을 마련했다. 먼저, 발행자는 1:1로 현금이나 93일 이내 만기의 미국 국채를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이 조건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실물자산, 특히 미국 국채에 직접 연결시키는 장치다. 둘째, OCC(연방통화감독청) 또는 주 단위 규제기관의 인가를 의무화하며, 셋째로는 매월 외부 감사를 받고 준비금 구성과 보유 비중을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테라-루나 사태에서 보았듯 변동성이 심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전면 금지된다.
이날 함께 통과된 두 개의 법안도 주목할 만하다. Clarity Act는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와 증권·파생상품의 구분 기준을 마련했고, CBDC 감시방지법은 연준이 개인 단위의 CBDC를 발행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감시형 디지털 화폐는 하지 않겠다. 대신 민간이 발행하고 정부가 감독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달러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이는 중국식 모델과는 결이 다른, 미국식 자유주의적 통화 전략이다.
이례적인 점은 이 입법이 가격을 끌어내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하루 만에 12만 달러를 회복했고, 리플(XRP)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JP모건과 씨티은행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계획을 공식화했고,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년 내 2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은 이 움직임을 단순한 통제로 보지 않았다. ‘공신력의 제도화’라는 더 본질적인 변화로 해석한 것이다. 투기에서 신뢰로, 무규제에서 공적 통제로. 질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첫째는 디지털 달러의 제도화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달러 기반이다. 이번 입법은 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법률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둘째는 미국 국채 수요의 구조화다. 발행사가 준비금의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로 보유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민간의 화폐 발행을 통해 국채 수요가 창출되는 구조다. 이미 테더와 서클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만 해도 1,80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한국의 보유량보다 많은 수준이다. 셋째는 CBDC 견제 전략이다. 중국은 중앙은행 주도의 감시형 디지털 화폐를 선택했지만, 미국은 민간 주도, 정부 감독, 시장 유통이라는 원칙 아래 자유주의적 디지털 통화 질서를 택했다.
하지만 전략이 치밀하다고 해서 구조적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위험은 ‘코인런’이다. 특정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경우 환매가 집중되고, 준비금으로 보유된 미국 국채가 대거 매도되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글로벌 유동성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또 다른 위험은 민간 독점화다. 대형 테크기업이나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과점하게 될 경우, 통화정책의 일부가 사금융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거 이동할 경우, 기준금리의 실효성이 약화되고 예금 기반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례 없는 전략에는, 전례 없는 위험이 뒤따른다. 미국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더 큰 전략적 이익을 택한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통화 질서를 설계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은 CBDC 실험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디지털 통화 질서 전체에 대한 전략적 응답이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자본 이동은 은행이나 환전기관 없이도 가능하다. 이는 외환통제권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유통이 일상화될 경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국내에서만 작동하는 반쪽짜리 신호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원화 기반의 디지털 경제활동 자체가 달러에 밀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번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단지 암호화폐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디지털 통화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고, 정당화하고, 선점하려는 전략적 입법이다. 우리는 그 변화를 단순히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통화 전략을 새롭게 그려낼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 위에 세워진다. 중요한 것은 규제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어떤 구조 위에 신뢰를 설계할 것인가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