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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zik Dec 31. 2019

시간이 지나니 잊혀졌다.

나무처럼 깊게 뿌리를 내린 삶.

       


"그거 알아? 새해가 되어서 듣는 첫 노래가 그 한 해를 결정한데."   

  



 친구가 무심코 던져놓은 말에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고민은 단순히 ‘어떤 노래를 들을까’에서 시작하였지만, 문제는 이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멜로디는 좋은데 가사가 별로이고. 가사는 좋지만 너무 우울해서. 그래도 새해에는 희망적이어야 좋지 않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노래는 중요치 않았다. 대신 중요한 건 내게 어떤 노래가 필요한지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바라본다면 내가 어떤 노래를 듣고자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작년 연말, 나는 독서실 한 칸에 앉아있었다. 책상에는 '회계사, 한 권으로 끝내기' 제목의 책들이 쌓여있었다. 책 한 권으로 공부가 끝나긴 할까. 이 제목은 왜 이리 쉽게 쓰여있는지. 아니면 책 제목 따위에 감정이 휩쓸리는 수험생이 잘못일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상황이 그리 탐탁지는 않았다. 꿈을 이룬다고 하는 공부가 오히려 나를 좀먹고 있었다. 그저 내가 너무나 불안했다. 작년 이맘때는 그랬다.    

 

‘나무처럼 살고 싶어 난

내가 뿌리내린 곳이 중심이며 나의

목소리에 담은 진심을 너의 맘에 심고서

오래도록 너와 머무르고파’     


 스쳐 지나간 노래 한 곡이 잠든 나를 깨웠다. 잠들어 있던 내 오랜 꿈을 깨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 이 순간들이 짙은 향기를 내뿜기 위해 나를 키워가는 시간일까. 아니면 안개처럼 흩어지는 삶에 불과할까. 나의 본질을 잊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펜을 들었다.

 '살면서 이 시기만큼 고독에 가까웠던 순간이 다시 찾아올까. 나 자신을 믿고 달려온 1년이다. 그동안 너무 많이 울고, 너무나 외로워서 나를 놓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많은 괴로움이 지금의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이들 모두 성장에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결과를 보여주는 일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미 나는 소중한 경험들을 이뤄냈기에 지금 지난 한 해를 바라보며 눈물보다는 웃음이 절로 난다.

 ‘재달’의 노랫말같이 나무처럼 살고 싶다. 앞으로 살면서 수없이도 많은 고난과 유혹들이 찾아올 거다. 그 속에서 내가 내린 뿌리는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다시금 비바람에 휩쓸리고 눈물 없는 눈물을 흘려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놓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붙잡고 나아가겠다. 1년 동안 나와의 대화 속에서 느낀 결론은 나는 다시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시험은 떨어졌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점수 차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어디에 가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울상 짓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런데 그게 참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에게 참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뜻깊은 경험들 속에서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나를 온전히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뿌리내릴 장소를 찾았으며 그 땅이 비옥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 짙은 향기를 풍기고자 한다.


 사실 시험장을 나오면서 바라본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웃기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니 잊혀졌다. 

1년 동안 지독히 나를 괴롭혀오던 일들이. 그리고 남아있는 건 내 안에 자리 잡은 아름다움뿐이다. 나는 결국에 이런 사람인가 보다. 어딘지 모를 예술 근처 어디쯤에서 꿈을 키워나갈. 이제는 내년을 함께 시작할 노래를 찾으려 플레이리스트를 뒤지고 있다. 이번에는 좀 새로운 감정 담고자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또 한동안 고민하겠지. 그런데 이런 모습 또한 나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대신 더 오랫동안 그리고 깊게 고민하려고 한다. 이번 새해에는 내가 어떤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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