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의 백지화부터 해외 첫 장기계약까지, 논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나는 벤 호로위츠의 『하드씽』을 다시 펼쳤다. 위기 속에서 회사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내 지난 7개월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불확실성, 무거운 결정,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외로움까지.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면, 나는 이 시간을 논스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무너질 수도 있었던 순간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회사가 10명을 넘어가자 조직은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변했다. 대기업과 외국계 출신의 뛰어난 동료들이 합류했고, 그만큼 더 큰 비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그 비전의 크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은 대표인 나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자고 말하면서도, 그 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논스의 회고 모임에서 동료 창업자들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과 그들의 경험담이 나를 깊이 흔들었다. “네가 진짜 그리고 싶은 그림은 뭐야?”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그 순간이 내 꿈의 크기를 키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공들여 만든 제품을 접었다. 해외의 강자들과 정면 승부해도 승산이 없었고, 그 제품을 진정으로 원하는 고객도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정을 내리자 팀은 요동쳤다. 12명이던 인원이 6명으로 줄었고, 팀원을 잃는 일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속 큰 공백으로 남았다. 번아웃이 찾아왔지만, 논스에서 함께한 동료들이 건넨 “지금 잠시 멈추는게 다음 더 높게 뛰기 위한 거야”라는 말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통영으로 향했다. 잔잔한 바다 앞에서 노트북조차 켜지 않은 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되새겼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라고 다시 정의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가능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 논스에서 보낸 시간은 그 낭만을 현실로 옮기는 방식이 화려한 포스터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실행과 증거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정작 내가 가장 주저한 영역은 ‘해외 고객발굴’였다. 카투사로 복무했지만 실제로 한국 밖에서 활동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고객은 오히려 이 빈틈을 원했다. 국경을 넘어 고객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고, 나는 도전을 수락했다. 논스에서 배운 피드백과 실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며 기존 제품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과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그 결과 1년짜리 장기계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올해 초 우리는 매출 7억 원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작년 1억 5천만 원에서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막막했지만 시도했다. 반년이 지난 시점, 우리는 3억 원을 달성했다. 절반이지만, 그 과정에서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한 타겟팅, 장기계약, 그리고 실행을 제품으로 묶는 리포트. 논스 덕분에 이 구조를 더 빠르게 실험하고 보완할 수 있었고, 시행착오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떠날 사람들은 떠났고, 남은 우리는 더 큰 도전을 택했다. “아시아 기업에게 국가를 넘어선 영업의 기회를 만든다.” 그 시작은 한국과 미국이다. 감사하게도 투자사의 지원도 있었다. 이 도전이 성공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 다음 주면 자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시장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4년 안에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며, 회사를 좋은 파트너에게 매각하는 장면까지 그려본다.
솔직히 혼자였다면 이 모든 과정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논스는 내게 일상의 리듬과 시야를 주었고, 사랑하는 연인은 매일의 도전 속에서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논스에서 경험, 그리고 사랑하는 은하와 함께라면, 나는 이 모든 꿈을 끝까지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