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rêve du jaguar』
떠나온 사람만 아는 그 감정이 있다. 설렘과 쓴맛이 한 덩어리로 목에 걸리는 느낌.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타국으로 나와 산다는 건, 실제로 새로운 나를 찾으러 왔다는 멋진 말 뒤에, 마지막 뒷모습을 평생 떠안고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권을 내밀던 손, 기대와 걱정이 함께 몰려오던 순간, 뒤돌아보지 않으려던 고집, 작은 창밖으로 내려다보던 익숙한 도시의 모습은 언젠가부터 내 인생의 프롤로그처럼 기억하게 되었다.
프롤로그가 있으면 에필로그가 있어야 한다. 떠나온 사람이 프롤로그를 쓰는 동안, 누군가는 조용히 에필로그를 쓴다.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빈손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밀려오는 무거워진 공기의 밀도까지.
사람들은 보통 떠나가는 이의 일상만을 새로울 거라 생각하지만, 남아 있는 이들의 하루도 새롭게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식탁에 놓인 접시는 하나가 줄어들고, 저녁에 울리던 현관 비밀번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유난히 조용해진 집에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발자국을 위해 마련된 슬리퍼가 현관 한켠에 얌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남겨진 사람들은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떠난 사람은 적어도 이유라도 설명할 수 있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잘 가라는 인사 뒤에 숨겨진 건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은 고요하다.
미겔 본푸아(Miguel Bonnefoy)의 『재규어의 꿈(Le rêve du jaguar)』는 말로 끝까지 표현되지 못한 쪽의 감정을 더 오래 응시한다. 프랑스로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따라가기보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의 아버지, 딸의 방을 치우며 멍하니 서 있는 어머니, 갑자기 하나 줄어든 식탁의 자리를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더 가까이에서 비춘다.
소설은 베네수엘라의 도시 마라카이보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한 벙어리 거지 테레사가 교회 계단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나중에 안토니오라고 불리게 된다.
안토니오는 테레사와 선장 엘리아스의 보살핌을 받지만 생활은 비참했다. 빈곤 속에서 담배 판매원, 부두 노동자, 매춘굴 심부름꾼 일을 하면서 연명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온다. 어떤 결정적인 계기로 삶이 바뀌게 되고, 안토니오는 결국 의대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에 들어간 안토니오는 고향 산타 리타를 떠나 도시의 호텔 마제스틱으로 올라오게 된다. 그 이후 계속해서 더 큰 세계로 나아가며 성공을 차곡차곡 쌓는다.
한편, 아나 마리아 역시 10대 시절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의사 리아 임베르의 강연을 듣고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도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고 만다.
대학에서 처음 만난 이 둘은 독재 정권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 결국 부부가 된다.
그리고 시위와 총성이 뒤엉켜 도시 전체가 소란스러운 어느 날, 둘 사이에서는 딸이 태어나게 된다. 그날 안토니오는 출산에 감격해서 말을 잃고 울기만 했다. 이름을 묻는 간호사의 질문에 대신 대답하는 건 아나 마리아였다.
"아이의 이름은 베네수엘라예요."
베네수엘라는 자기 나라의 이름을 달고 태어난 아이였다. 자유와 반란의 기운을 한 몸에 품은 아이.
부모와 주변 모두는 당연히 이 아이도 의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딸을 카요 펠론의 작은 진료소에 데려가 수술 보조를 시키고, 어느 날에는 허벅지에 작살이 박힌 어부를 즉석에서 수술할 때 베네수엘라에게 칼을 쥐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10대가 된 베네수엘라는 자기만의 탈출 계획을 짜게 된다.
그녀가 계획을 짜는 동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안토니오는 병원과 새 대학 건설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집에는 지나가는 유령처럼 잠만 자러 들어올 뿐이었다. 아나 마리아는 산부인과와 강의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외할머니는 늙어 제단과 초에 파묻혀 살았다.
집 안에서 실질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은 베네수엘라뿐이었다. 그녀는 그 틈을 이용해 자신의 방을 파리 엽서와 에펠탑 포스터로 도배했고, 프랑스어에 집착하면서, 마음속에 언젠가 떠날 도시의 지도를 그려 넣었다.
이때 잠시 돌아왔다 다시 사라지는 인물이 있다. 마법과 점성술, 혁명 운동을 전전하면서 떠돌다 돌아온 오빠 페드로다.
그는 집에 잠깐 머무르다가, 다음날 다시 유럽, 아마도 파리로 떠나겠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의 존재는 잠깐 스쳐 가지만, 베네수엘라에게는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 존재가 된다.
고민 끝에, 베네수엘라도 결국 오빠처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아나 마리아 방에 조용히 들어가 오래 준비해 온 단 한 문장을 꺼내 놓는다.
"파리로 가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아직 이 방에 있네요."
이 말을 들은 아나 마리아는 충격을 받는다.
페드르를 떠나보냈는데, 딸까지 잃을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아나 마리아는 베네수엘라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게는 안토니오의 허락만이 남아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정말로 진료 예약을 잡 듯 시간을 잡아서 안토니오와 대화를 한다.
"파리로 떠나고 싶어요."
하지만 안토니오는 반대한다.
"어디도 가지 않을 거야. 네 운명은 여기, 우리 곁에 있는 거야."
결정적인 전환점은 학교의 자선 바자회에서 열린 복권 행사에서 시작된다.
베네수엘라는 복권에 당첨되고, 상금으로 금으로 만든 펭귄 브로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 금을 팔아 떠날 자금을 마련한다.
드디어 집에서 탈출하는 계획이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아주 구체적인 실천로 다가오게 된다.
베네수엘라는 투쟁 끝에, 마침내 안토니오의 허락을 받게 된다.
그 후 그녀는 체계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방을 비우고, 책을 나눠주고, 작은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 나가 자신의 물건들을 수면 아래로 던져 넣는다. 그리고 자신을 떠나게 해 준 복권 한 장만을 남겨 놓는다.
드디어 집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베네수엘라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새로운 언어와 오래된 문화로 가득 찬 마음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면서, 마음속에는 흥분과 씁쓸함이 동시에 차오른다.
아나 마리아는 딸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녀는 여행이란 가장 탐욕스러운 영혼을 빨아들이는 자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토니오는 강한 성격답지 않게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딸을 세상이라는 미궁,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넘기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가 출국한 직후, 안토니오는 도시의 낡은 대학 건물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새로운 국립대학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는 거의 잠도 자지 않고 공사장을 돌아다니면서 설계도를 들고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 사이 집은 점점 더 공허해져 간다.
결국 안토니오는 집에 돌아와도 잠깐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가는 유령 같은 가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나 마리아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베네수엘라에게 소식이 없자 딸의 소식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아들을 잃었을 때처럼 딸의 귀환을 기도하는 의식을 반복한다.
이 차갑고 오래 지속되는 불안은 결국 그녀를 십수 년 동안 침대에 눕혀 놓는 병의 씨앗이 되고 만다.
베네수엘라는 카라카스와 파리에서 40통이 넘는 긴 편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엉망인 우편 시스템 때문에 그 많은 편지는 1년 반 뒤에야 한꺼번에 도착하게 된다.
집 안 식탁 위에 종이 더미처럼 쌓인 편지를 보며, 가족은 비로소 딸의 시간을 따라잡는다.
그 편지 속에서 베네수엘라는 다국적 도시의 소음, 서점과 극장, 새로운 사랑, 그리고 결국 파리 유학까지, 자신이 꿈꾼 삶을 하나하나 실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안토니오는 대학 건설을 마친 뒤, 모든 공식 직책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와 빠르게 늙어간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의 죽음의 시기를 스스로 정하고, 한 세기의 폭력과 기적을 함께 겪어온 도시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 이후, 아나 마리아는 푸른 아라새처럼 짝을 잃고 사랑 때문에 죽어가는 새처럼, 방에 틀어박혀 세상과의 관계를 끊는다.
그 사이 베네수엘라에서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베레 모자 쓴 젊은 장교가 대통령이 되고, 나라 전체가 새로운 위기로 휩싸여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각자의 재규어의 꿈을 안고 다시 한번 떠나게 될 조짐을 보인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베네수엘라의 아들 크리스토발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는 베네수엘라와는 반대로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의 고향 마라카이보로 떠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제는 모두가 떠나버린 집에 다시 도착한 크리스토발은 외할머니 아나 마리아 곁에 머물며 소설을 쓰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예외 없이 한 번씩 떠난다. 교회 계단에 버려진 채 출발선 자체가 바깥에 놓여 있던 안토니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올라온 젊은이들, 강연 하나를 계기로 집과 도시를 떠나 여성 의사가 된 아나 마리아, 혁명과 점성술 사이를 전전하다 집을 스쳐 지나가는 페드로, 그리고 끝내 타국으로 건너가는 딸 베네수엘라까지.
떠나는 행위는 잠깐의 방황이 아니라, 세대를 관통해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소설은 떠난 사람도, 그리고 남겨진 사람도 모두 떠나는 쪽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안토니오가 베네수엘라가 떠나겠다는 말에 "우리는 말한 것의 노예이고, 말하지 않은 것의 주인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떠난 이와 남겨진 이 사이의 침묵을 미화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침묵이라는 전략이 어떻게 둘 사이의 거리를 더 벌려놓는지 보여줄 뿐이다.
소설이 편안하게 읽히는 이유는 이런 침묵과 거리의 감정을 설명이나 해석으로 밀어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딸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직감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어머니, 그리고 딸이 떠난 뒤 일과 프로젝트 속으로 더 깊이 잠수해 버리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 역사를 기록하는 손자 크리스토발이 있다.
태어난 대서양을 건너 마라카이보의 오래된 집으로 다시 돌아가 대부분의 인물이 사라지고 노년의 아나 마리아만이 남은 이 집에서 그는 떠나온 이야기를 듣고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가 써 내려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처 기록하지 못한 서사가 뒤늦게 정리되는 이 결말은 오랫동안 방향을 잃고 떠돌던 편지가 마침내 수신인에게 도착하는 장면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