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nch Toast Mafia Jan 19. 2022

독서 모임, 왜 해요?

질문에 대한 내 지나치게 사적인 대답

    작년 겨울의 반환점을 돌면서 시작한 독서 모임이 반년을 넘기자 더위를 못 이겨내고 시들해졌다. 첫 술은 달콤했으나 배부르지 않았던, 어설픈 시작의 결말이었다. 서로 대단한 약속 아래 모였던 것도 아닌 데 정성을 쏟은 나와 타인의 마음의 크기가 같지 않았다는 점은 상처로 다가왔고 그래도 추슬러서 계속해보자며 마음을 한데 모아준 사람들이 없지 않음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풀 꺾인 기세로 북클럽 시즌 2는 시작했다.




    첫 책은 은모든 작가의 중편 소설 <안락>.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가까운 미래에 법안이 완화되어 개인이 자의에 따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안락사/존엄사'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할머니와 둘러싼 가족들을 손녀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이야기다. 은모든 작가는 책 말미 작가 노트를 통해 "문득 희망찬 무드에 젖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소설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밝혔다. 이 구절,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강렬하게 눈에 박혔다. 이미 지어낸 이야기인데 소설을 넘어서 동화처럼 읽힌다라는 표현을 오래 곱씹고 밑줄 친 채로 모임날을 기다렸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


    모임 시작부터 내 마음은 같은 구절을 맴돌았다. 적절한 발언의 때를 기다렸다 인상적인 구절로 언급하며 덧붙였다. 다가오는 생의 끝을 똑바로 견지한 채로 주변을 정리하고 이젠 안녕, 할 수 있는 능동의 힘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그러한 개인의 결정을 가족들이 (끝내는) 받아들여 임종을 앞둔 할머니 머리맡에 모여 작별의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광경은 참으로 동화만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노라고.


   이에 뜻밖의 이야기들이 돌아왔다. 내 말을 이어받은 누군가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맺음까지 할머니의 결심이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다는 것이 놀랍고 동화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한평생 둘째로 자란 본인에게 있어, 할머니가 마지막에 둘째 손녀에게 언니보다 먼저 인사와 고맙다는 말을 건넨 것이 인상 깊고 동화 같았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터놓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 생각과 감정이 얼마나 경험들에 얽매어 는 지를. 내게 <안락>의 내용은 2019년 갑작스러웠던 이모와의 이별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가족들의 작별 장면이 유독 판타지 같고, 희망상상의 산물이라 단정 지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끝이 끝임을 알고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 내게 동화라는 표현의 유일한 해석이었다.


    독서 모임의 대화가 무르익어 존엄사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지자 더욱 분명해졌다.  직관과 논리의 근거온전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에 뿌리를 있었다. 나의 이모는 오랜 시간 루게릭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 기약은 없으나 불가피했던 죽음의 그림자 앞에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지, 치료 방법이 없는 병 앞에 오롯이 고통을 받아내는 당사자와 가족들이 느끼는 또 다른 공포와 아픔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방법은 없겠지. 가슴 아프면서도 황홀한 책 속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가 아는 방식대로 해석하고 공감하며 위로를 받았고, 은연중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독서 모임에서 저마다의 감상과 인생 경험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삶의 순간과 선택들을 또렷이 마주하고 나를 한층 이해하게 되었다.


북클럽 계속하길 정말 잘했어!


    모임이 끝나자마자 잔류를 결정했던 기존 멤버들에게 들떠서 연락했다. 첫 독서 모임에서 두 번째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삐걱거림에 잠시 왜 북클럽을 계속해 나가고 싶은지를 잊었던게지. 이유의 부재를 틈타 자리 잡은 '계속하길 잘한 걸까?' 하는 불안감은 어느새 다시 설렘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래서 독서모임 계속한다. Because it humbles you. 같은 이야기, 한 구절에서도 이렇게나 풍부하고 다양한 감상과 개인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 세상은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쭉 책 곁에 해왔으니 제 나름의 독서력, 독해력을 자신했다. 작가와 대화하고 내 삶에 비추어 글에 공감하고 해석해 내 것을 만드는 것. 그것이 독서의 전부인 줄 알았다. 나와 책만 존재하는, 내 목소리만 메아리치는 세상에서 문을 열고 나오니 이런 별천지 세상이 있을 줄이야. 남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고 짐작하는 것과 실제로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의 천양지차를 함께 읽기로 익혔다. 서평이나 감상글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 글을 읽는 과정이 또 하나의 책을 읽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그 글들은 뒤따르는 내 생각에 반문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모임을 통해 책을 매개체로 대화를 쌓아가다 보면 같은 책도 다차원으로 읽힌다. 그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배우게 되는 폭이 커진다. 흔히 하는 말로 가성비가 좋다고나 할까? 물론 함께 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겠지. 그들 역시 마음을 열고 내면 깊은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 주어 함께 해주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맙다.




- 독서 모임 시즌 2를 마치고 누구 하나 빠짐없이 시즌 3에 들어가기 앞선 시점에서.


Photo by Alexis Brown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2021년 독서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