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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nch Toast Mafia Jan 12. 2022

2021년 독서의 기록

꼬박 364일 걸려 100권 읽기 성공!

    작년 1월 호기롭게 올 한 해 100권을 읽어보겠다며 전에 없던 신년 목표를 세웠다. 돌아보면 그때는 반 격리된 실내 생활에 남는 시간과 노력을 쏟을 곳을 필요로 했구나 싶다. 코로나와 함께 한 그 전 1년은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내는 데만 급급했으니.


    부지런히 읽어내면서도 해내겠다는 자신감은 없었나 보다. 꽤 오랜 시간 혼자만의 수줍은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거든. 반년쯤 지나면서는 50권도 많이 읽은 거지, 안분지족하고 슬쩍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한 달 남겨 놓고는 얇은 책만 골라 읽을까 하는 유혹도 많이 찍어 눌러야 했다. 마지막 1주 동안은 유혹에 잠시라도 마음 준 게 창피해서 더 무겁고 분량 낭랑한 책들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12월 30일에야 100권이라는 결승점을 넘었다. 캬, 그 성취감이란.


    이젠 머나먼 학생 때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할 수 있는 맹목적인 열정과 순수함이 있었고 그냥 그렇게 영원히 내 것일 것만 같았다. 한데 막상 사회인이 되어 훅 불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이 위태로운 신분에서 벗어나니, status quo (변화 없이 유지하는 현 상태) 이상으로 더한 무언가를 실행에 옮긴 다는 것이 갈수록 힘겨워지더라. 월급 받으면서 시키는 일만 해도 당장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배 곪지 않고 큰 탈 나지 않는 걸 안다는 게 그렇게 나를 게으르게 했다. 


   그래서 더 의미 있었다.  삶의 찌든 때가 묻어나는 설거지나 청소, 월세 내기 같은 의무도 아니고 밥벌이와도 관련되지 않은, 그저 나를 나라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기 위한 부수적인 활동을 꾸준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만 같다. 어머, 그때의 너 아직 거기 있었구나! 대단한 발견을 한 기분. 그래서 기록해둔다. 다시 필요할지 모를 훗날의 발견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


가장 오랜 기간 읽은 책

No Higher Honor / Condoleezza Rice

    다사다난이라는 흔한 표현으로 다 설명할 수 없이 탈 많은 임기를 보낸 전 미국 국무장관 라이스의 회고록이다. 9/11 사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같은 역사에 남을 일들을 겪으며 사명감을 띠고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은 가지만, 와우.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어떤 이벤트에서 어느 나라 외교관이 입고 있었던 복장, 스치며 흘렸던 농담과 얼굴 표정까지 정말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재밌는데, 재밌는 게 맞긴 하다만... 1년을 꼬박 짬 날 때마다 읽으면서 한 해를 채 3일 정도 남겨두고도 약 300 쪽 정도 더 남은 책을 보고 있자니 해를 넘기면 절대 완독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아찔한 예감이 들었다.


     Worth the read. 방대하지만 정말 잘 쓰인, 개인적인 터치가 곳곳이 묻어나는 책이다. 오래 읽은 책인 만큼 읽는 동안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철군, 중국과의 외교 전쟁, 러시아와 주변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뉴스로 접할 때 더욱 깊고 또렷하게 현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프간 전쟁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그 전쟁을 겪어낸 당사자의 설명을 혹자는 변명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 얘기를 들으며 당장 미군의 철군 뒤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내부 혼란을 들으니 속이 많이 시끄러웠다. 또 힘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국제 정세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간접 경험을 통한 지평을 넓히는 독서의 의의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깔깔 소리 내어 웃으면서 읽은 책

A Walk in the Woods / Bill Bryson

    작년 초 방송했던 <북클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은희 작가가 소개한 책으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이토록 유쾌한 말재주를 가진 작가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지? 영어 원문 글은 주로 필요에 의해 비문학이나 대표적인 고전 읽기로 소극적으로 접했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유머에 공감하고 깔깔거릴 수 있었다는 게 엄청 고무적이었다.


가장 유용했던 책

독서모임 꾸리는 법 / 원하나

    내게는 이만한 실용서가 없었다. 작년 한 해 독서모임을 만들어 끌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책 덕분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었고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에는 따스한 격려도 얻을 수 있었다. 1년 동안 소소한 고민이 생길 때마다 몇 번을 다시 들추어 보았던 책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책 (in a good way!)

Weapons of Math Destruction: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and Threatens Democracy / Cathy O'neil

    동료에게 몇 년 전에 추천받은 책인데 완독 할 힘을 기르는 데 오래 걸렸다. 붙잡고 책의 세계에 좀 빠져볼까 하는 동시에 내가 악의 축만 같고, 세상의 모든 불공평을 생산해내는 가해자가 된 것만 같은 불편함을 가져오는 책. 그 꾸짖음을 견뎌내고 오롯이 자성하고 만사에 인공 지능이 답인 것 마냥 행동하는 업계의 분위기에서 기꺼이 빠져나올 수 있는 내면의 탄탄함이 필요했다. 막연한 목표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해 타인과 터놓고 얘기해보고 외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겸허하고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의외로 재미있었던 책

돌이킬 수 있는 / 문목하

    장르 소설 내 취향 아니야, 쇄국 정책을 펼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집어 들자마자 밤새 끝까지 내달리게 만든 책. 재밌다!


우주를 향한 골드러시 / 페터 슈나이더

    나는 이 책이 너무 재밌었어. 베조스랑 머스크랑 그렇게 투닥투닥 입씨름을 하면서 우주 산업에서 누가 더 잘났네 하는 모습이 우습고 호기심이 들기에 골라 한국에서 배송까지 시켜 읽은 책이다. 우주 에어비앤비 (숙소 렌털), 우주 아마존 (배송) 서비스 같은 건 대체 어떻게 생각해내며 그걸 진짜 해보겠다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이런 별 난 놈들이 세상에 많다던데, 그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올해 발견한 작가

은유

    밀리의 서재에 등록된 은유 작가님의 책은 모두 읽고 등록되어 있지 않은 작가님의 첫 책은 사서 읽었다. 은유의 글과 생각의 흐름이 내게 꼭 맞는 옷 같기도 하고 내가 갖지 못한 재능만 같아서 탐욕스럽게 작가 이름만 보고 읽어 내렸다. 


눈물 흘리며 읽은 책

소년이 온다 / 한강

    이런 주제와 문제의식으로 감탄할 글을 써내는 동시대 한국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쇼코의 미소 중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최은영

    꽤 오랜 기간 이모의 간병을 한 엄마 모습도 떠오르고 건강하셨을 때 이모와 엄마의 관계도 눈에 선하게 만들어서 이 단편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 또 내 여동생을 떠올리며 혈육의 애틋함과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지의식을 다시 곱씹어 보게 했다.


올해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피프티 피플 / 정세랑

하얀 성 / 오르한 파묵

랩 걸 / 호프 자런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 신영복

올드걸의 시집 / 은유

살아남은 그림들 / 조상인 (세상에, 이 책이 리스트에 없었잖아. 그럼 나 101권이네..)









100권 챌린지의 끝에서...

    참 잘했다. 두 번은 힘들겠다만.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다분히 긍정적으로 작용해 허무하게 흘려보내는 시간들을 모두 책 읽는 시간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조금 지루한 구간이 있더라도 완독 해야 할 동기도 되어 주었고. 동시에 단순하게 숫자를 채우기 위한 독서를 피하기 위한 노력도 많았다. 리더스 어플에 기록되는 독서 분야 파이 차트가 고르게 분포되도록 신경 쓰면서 책을 고르고 도저히 재미없고 의미 없다 싶은 책은 (그런 책이 밀리의 서재에 너무 많아!) 눈 질끈 감고 내려놓았다.


    과정에 있어서도, 결과에 있어서도 만족할 수 있었던 독서의 한 해였다. 놓지 말자, 잃지 말자 그 생각뿐이다. 해내기도 전에 이렇게 해내겠다고 떵떵대는 건 아무래도 부끄럽기도 하고, 분명 자신 없음도 있고 하니 올해의 독서 목표는 우선 독서모임 다른 분들하고만 공유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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