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꿈, 사랑, 추억, 번식, 가족, 건강 등 여러 가지 후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다르다. 어떤 가치가 더 우선일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고를 조금 확장해 논리를 세워보면,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 하나는 분명히 있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꿈과 희망에 가치를 높이두는 경향이 있다. 이미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꿈을 가지라고 말할 때, 나는 언제나 고개를 끄덕인다. 트집 잡을 것 하나 없는 좋은 조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든 사람도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반문한다면 아마도 나를 어린애 취급할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삶을 바꿀 만큼 원대한 꿈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젊음이다. 아직 여생이 많이 남았더라도, 청년만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란 어렵다. 꿈을 꾸는 데에는 돈이 들지도 않고, 특별한 조건도 붙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꿈과 희망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꿈은 소중하지만, 시간보다 앞설 수는 없다.
나처럼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돈 역시 같은 이유로 시간 뒤로 밀린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고, 내 시간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땅 파면 돈 나오냐, 땅에서 돈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공짜일 수는 없다. 땅을 파는 동안 내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삶의 요소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조금 추상적인 ‘추억’을 보자. 추억은 과거의 소회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다. 다시 한 번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이 기억을 지배하는 것이다. 결국 추억하는 자가 원하는 것 역시 시간이다. 인생 자체가 시간으로 짜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시간이 멈추면 모든 사람이 얼어붙듯, 시간은 존재의 기본 전제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너도 나도, 옆집 파마머리 아주머니도 하루는 24시간이다.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유일한 자산이다. 하지만 삶의 난이도와 결과, 질은 제각각이다. 평등한 시간을 받았음에도, 각자의 삶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누군가는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파산한다. 물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계속 부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삶의 질을 가르는가. 돈, 사랑, 가족, 건강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기초에는 언제나 시간이 있다. 부유함을 만드는 것도, 가난을 만드는 것도 결국 시간이다. 똑같이 주어지지만, 사실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그 밀도는 엄연히 다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은 더딘다. 시공간은 속도와 중력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우주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내가 죽으면 내 삶은 끝이고, 내 인생이 곧 세계 전체다.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은 나와 상관없다. 하지만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의 중력 아래에서 시계의 흐름은 모두 같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열중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농도는 달라진다.
어떤 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밀린 업무를 끝내고, 퇴근 후에도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하루는 바쁘게 지나가지만, 결과적으로는 길고 풍성하다. 반대로 알람을 몇 번이나 미루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붙들다 잠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하루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린 것처럼 짧고 공허하다. 같은 스물네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누군가는 세상을 확장시키고 누군가는 오히려 축소시킨다.
같은 한 시간, 길이는 같지만 밀도는 다르다. 시간을 농도 높게 보낸 사람만이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을 손에 넣는다. 돈, 사랑, 번식, 추억, 건강 등 말이다. 각자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다르게 흐른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우주의 시간 속도는 공간이 결정하지만, 내가 말하는 시간의 농도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의 재력 같은 외부 환경의 영향도 분명히 있다.
아인슈타인의 E=mc²에 비유해보면, 돈=재능이다. 돈과 재능은 타고나야 한다는 면에서 닮았고, 돈이 있으면 타인의 재능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구분 또한 무의미하다. 만약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돈을 택하겠지만. 그러나 거꾸로 재능을 활용해 돈을 벌 수도 있다. 질량이 응축된 에너지로 바뀌듯, 돈과 재능은 늘 등가교환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말도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나 자신조차도, 실은 보이지 않는 혜택을 누리고 있을지 모른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돈과 재능은 E=mc²처럼 완벽하게 등가교환하지 않는다는 거다. 얼마나 유용한 재능인가 하는 것은 가치 판단의 영역이며, 돈은 그 가치를 수치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재능 있다’라고 말하는 장점들, 이를테면 음악이나 미술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정작 돈을 많이 버는 예술가는 드물다. 대단해 보이는 재능이 반드시 대단한 교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돈을 가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유리할 수 있지만, 가치판단을 잘하지 못하면 부는 쉽게 무너진다. 재능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짙게 살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제대로 쓸 수 없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의 법칙은 규칙적이고 예외가 없다. 하지만 인생에서 시간의 법칙은 규칙적이지도 않고 예외가 많다. 그 틈새를 파고들면 시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시간의 농도가 짙을수록 그 틈새는 더 쉽게 열린다. 불규칙성을 활용해 작은 재능으로 큰 돈을 버는 사례가 실제로 많다. 적어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돈, 추억, 사랑, 번식, 건강은 결코 규칙적으로 분배되지 않는다. 스스로 시간을 짙게 살아내어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모두 ‘내 시간의 농도,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인생도 우주와 같이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의 통합이다. 시간은 타고나는 것이고, 물질과 에너지는 내 시간을 활용해 취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만큼은 오직 내 시간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공간은 나의 시간과 타인의 시간이 합쳐져 형성된다. 설령 내 시간의 농도가 낮아도, ‘공간’을 잘 활용한다면 시간을 더 짙게 만들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시장’이라고 부른다. 원하는 것을 사고파는 장터, 여러 사람의 시간을 농축해 거래하는 공간이다. 오직 시간만 가진 범부라 할지라도, 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특혜를 얻는 셈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루를 받지만, 그 하루를 어떤 농도로 살아내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공허한 24시간을 반복하고, 누군가는 짙은 한 시간을 남긴다. 인생은 길이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밀도 있게 태워냈는가로만 평가된다. 결국 시간의 농도에 따라 삶의 질이 갈린다. 우주는 내 인생만큼 가까운 세계가 아니다. 마음속 작은 우주에는 예외 없는 규칙이 있지만, 인생에는 예외가 많다. 바로 그 불규칙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혜택이자 삶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