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액션을 인질로 잡고 2시간 강탈하기

fresh review

by 정세현

음식이 정말 맛있는 식당이 있다고 해보자. 가격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도 맛 하나 보고 견딜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영화도 비슷하다. 다른 요소들이 썩 마음에 안 들어도 정말 괜찮은 요소가 한 가지 있다면 일단 관람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류승완 감독이 액션 연출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휴민트>역시 그런 류승완 감독의 장점이 번뜩이는 장면들이 있다. 액션의 절대량이 많지는 않지만 배우들이 육탄전을 벌이는 몇몇 액션씬은 헐리웃 영화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퀄리티에 나름의 신선함까지 있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영화에 짙게 깔린 드라마 요소를 싹 겉어 내고 차라리 액션의 분량과 순도를 더 높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휴민트1.jpg 인질로 잡힌 액션


문제는 몇십 분 정도 분량의 육탄전을 만나기 전과 후는 사실상 고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액션씬에서는 그토록 타이트하고 아름답던 편집점과 연출의 리듬감이 해당 장면들만 벗어나면 갑자기 다른 영화가 된 것처럼 맥없이 주저앉는다. 이야기에 필요한 내용들은 주구장창 인물들의 대사로 처리하고 첩보물을 표방하는 영화임에도 캐릭터와 사건 사이에서 생성되는 긴장감도 부족하다. 심지어 앞에서 언급한 육탄전을 제외하면 다른 카테고리의 액션씬들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고 총을 활용한 장면들은 과거로 퇴보한 기분까지 든다. 주연진 리스트가 화려한 이름들로 채워진 것에 비하면 연기면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휴민트2.jpg 강탈당한 시간들


결론적으로 <휴민트>는 얼마 없는 고퀄리티 액션장면들을 볼모로 관객들의 2시간을 강탈하는 영화다. 정말 좋은 액션장면들이 있기에 영화관에서 본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지인에게 관람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더불어 나 또한 OTT에서라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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