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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30일 전, 야자 탈출기

10대와 20대의 사이에서

by 새내기권선생

바르게 사는 법은 닳도록 배우지만, 삐뚤어져보는 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10년 전의 그날은 불현듯 떠 오른다.


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보자면, 소위 '노잼'으로 살았던 거 같다. 누가 강요했던 것도 아닌데,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해야지'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놀러 다니는 친구를 바라보며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걱정과 한심을 외치고 있었다. 정작 나도 공부의 목적을 모르는 채로.


그런 어느 날, 10월의 어느 야간자율학습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야자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 지, 10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신호음 같기도 하고, 작고 희미한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명이었다. 몸과 뇌가 정지되는 거 같았다. 도대체 '여기서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생겼다. 지금 이대로 이 자리에 절대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혼자 교실을 나서기로 했다.


학교를 무작정 나와 집 반대 방향의 1호선 지하철을 탔다. 목적 없이 지하철을 타보니, 사람들이 무언가 전과 다르게 보였다. 아이와 노인, 여자와 남자, 내국인과 외국인까지. 그리고 졸고 있는 사람들, 휴대폰을 하는 사람들, 통화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사연대로 지하철은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라고 생각할 때쯤, 역에서 내렸다. '부산대역'이었다. 대학을 위해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난생처음으로 대학을 와봤다는 사실이 피식 웃음 짓게 했다. 대학교 입구를 향한 출구로 나왔다. 먹거리 가게들과 옷 가게들이 줄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거리를 복작하게 메우고 있었다. 어색했지만, 크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골목 속 그윽한 분위기가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골목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 보니, 대학교 입구가 보였다. 계단을 오르며 한쪽을 보니, 조명 아래에 여러 명이 유니폼을 입고 농구 대결을 하고 있었다. 서로 구호를 외치며 기합을 넣고 있었고, 땀을 흘리며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야구 점퍼를 입은 형, 누나가 손을 잡으며 걷고 있었다. 무언가 서로에게 속삭이고 있었는데, 웃음 짓는 그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 교복을 입고 안경을 쓴 내 모습이 상당히 초라해 보였다.


10대의 마지막에서 그들을 보니 마음이 몽글해졌다. 몇 년의 차이지만 우리는 참 다른 인생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들의 자유로움은, 마치 청춘 드라마 속 싱그러운 한 장면 같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보였고, 현재의 삶을 즐기는 모습이 설레게 했다. 평소에 상상했던 대학 생활이 내게 머지않은 거 같아 두근대기 시작했다.


마음 한 군데에서 무언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내 진짜 목표가 되었다. 그냥 공부가 아닌. 그들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하는 공부. 간밤에 조명 아래 친구들과 운동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캠퍼스를 걷는 삶. 내 수험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꿈이 되었다. 한 번의 일탈이 내게 바꿀 수 없는 버팀목이 되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동기'란 참 중요하다. 남들이 보기엔 정말 사소한 일일이지라도, 누구에게는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10월의 이날쯤이면 고등학생 때의 내 작은 일탈이 생각난다. 얼굴도 몰랐던 그들로부터 꿈을 얻었던 일들은, 내게 참 소중한 보석이 되었다.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한 번 잘 삐뚤어져 봐야 더 잘 살 수 있다. 친구와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건강하게 싸워야 단단한 관계가 되는 것처럼. 잘 삐뚤어지는 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그게 곧, 우리 어른이 학생들에게 해줄 수 일이 아니겠는가.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과, 삶의 목적에 대해 알려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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