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이는 평소처럼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넷플릭스 한 장면을 보며 연신 낄낄거렸다. "야, 뭐 보냐? 껄떡대는 거 보니 겁나 재미있나 보네." 은호가 트레이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승현이의 옆에 앉았다. 승현은 대충 손을 휘저으며 들은 척하지 않았다. "야, 근데 너 지금 넷플릭스 공홈에서 보는 거 맞지? 돈 아깝지 않아?" 승현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응. 친구들이랑 계정 같이 공유해서 보고 있지. 개이득." 은호는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래도 대학생이 돈도 없는데 그런 데 돈을 왜 써? 아껴야지." 듣고 있던 승현이 흥분하며 말했다. "야, 그럼 뭐 나보고 토렌트 같은 곳에서 불법 다운로드하라고?" "아니, 뭔 소리야." 은호는 승현의 대답을 듣고 잠시 뜸을 들였다. 고민하는 척하더니 승현에게 말을 꺼냈다. "너 구구티비 몰라? 거기 다 공짜야. 위에 있는 불법 도박 광고는 그냥 넘기고, 재생 전에 이상한 광고 잠깐 참다 넘기고." 은호는 구구티비 사이트에 접속해 화면을 직접 보여주었다.
승현의 눈은 번쩍 뜨였다. OTT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사이트라고?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승현은 은호가 알려준 사이트에 접속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상상 이상의 광경이었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심지어 왓챠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모든 OTT 플랫폼 콘텐츠가 이곳에 모여 있었다. '무료'라는 아주 매혹적인 단어와 함께 말이다. 물론 불법 도박 배너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스크롤만 내리면 될 뿐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간단했다. 보물 지도를 발견한 탐험가처럼 흥분했다. '아니, 이게 진짜 전부 공짜라고? 말도 안 돼…' 짜릿함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리고 온갖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생각에 행복함이 밀려왔다.
며칠 후, 승현이는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을 보던 중 한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넷플릭스 다인원 계정으로 같이 공유해서 쓰실 분 구해요. 비용은 1/n로 나누어요.' 순간, 은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돈 주고 왜 넷플릭스를 보냐고.' 승현은 해당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 '공짜로 보는 법 있어요! 구구티비라고…' 승현이는 친절하게 링크까지 덧붙여 보냈다. 작성자는 승현의 댓글에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댓글을 달았다. 보아하니 작성자도 해당 사이트를 처음 알게 된 모양이었다. "와… 이런 사이트가 있었어요? 진짜 대박.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승현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미련한 중생을 구원해 준 것만 같았다. 그 후로도 비슷한 글이 올라올 때마다 승현은 적극적으로 해당 사이트를 추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승현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마포 경찰서'.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다. "김승현 씨십니까? 저작권 침해 관련해서 조사가 필요합니다. 경찰서로 출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관의 낮은 톤에는 어딘가 뼈가 있는 것 같았다. 승현은 곧바로 경찰서를 찾았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 보는 조사실이었다. 조사실만의 차가운 공기와 낯선 분위기는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형사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승현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신고되었다고 했다. 그 순간, 승현의 머릿속은 순간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내가 저작권 위반이라고? 무슨 말이지?' "구구티비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하는 건 명백한 저작권 침해 행위입니다. 저작권법 제136조에 따르면, 불법 복제물을 유포하거나 영리 목적으로 배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어요. 김승현 씨는 직접 유포는 안 했지만, 그런 사이트를 홍보하고 링크를 공유해서 다른 사람들도 불법적으로 콘텐츠를 이용하도록 동조한 셈입니다." 형사는 관련 법 조항을 한 번 더 설명하며 저작권 침해 시 받을 수 있는 처벌 수위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그 액수를 듣는 순간, 승현의 손이 후들거렸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저 몰랐어요… 진짜 몰랐어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앞에 있는 경찰에게 용서를 빌었다.
승현은 그제야 '저작권'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저작권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가지는 권리라는 것을, 그는 그때 처음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무지함이 가져온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조사를 받는 내내 승현은 허탈감과 민망함에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경찰서에서는 그에게 초범이라는 이유로 저작권 관련 교육을 이수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교육장에 앉아 여러 사례와 설명을 듣는 동안, 승현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 복제로 인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연간 피해액은 약 4조 2천억 원에 달합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아닙니다. 수많은 창작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강사의 말을 들으며 승현은 뒤늦게 깨달았다. 공짜라는 달콤한 유혹에 눈이 멀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의 노력과 가치를 짓밟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면 속 드라마 한 장면,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 한 조각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각본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들의 창작 활동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의 정당한 수익이 보장되어야 콘텐츠 산업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승현은 두 번 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창작의 가치를 존중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후, 승현은 에브리타임에 새로운 글을 올렸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공유했던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글에는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저작권의 중요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경고가 담겨 있었다. 댓글로는 비웃는 댓글도 많았지만,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들도 적지 않았다. "저도 무심코 사용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정신 차렸네요.", "용기 있는 글이네요. 저도 반성합니다."
승현의 얼굴에는 후회와 함께, 새로운 다짐의 굳건함이 어려 있었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진정한 '무료'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창작물에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와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