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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하 Aug 15. 2023

휴직했지만 제 시간은 온전히 제 자유예요 어머니

이제 한가해진 며느리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은 부디 삼가 주세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무리한 탓에 휴직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의 성향과 성격이 회사생활하기 힘든 편이라는 것도 스스로 어느 정도는 인정하게 되었고, 출퇴근 거리도 먼데다 기차시간을 맞춰 통근해야 하는 어려움이나 두 살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10시간이나 맡기는 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댁과 5분 거리에 살지만 어머니가 건강하지 않으시다는 시아버지의 거절로 육아 도움은 거의 받지 않는 상황이고 그것이 조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으며 가끔 음식을 해다 주시는 부분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주 가끔 연차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아기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등등의 특정한 사정이 생길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섭섭함은 넣어두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떠나는 해외여행이나 친구분들끼리의 잦은 지방 여행,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다니는 탁구는 건강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큰 무리가 없는 건지 의아할 때도 있지만..


얼마 전 휴직을 고민하던 찰나에 시댁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다 나온 이야기. 회사 상사도 너무 힘들게 하고 육아휴직 후 복직하고 나니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팀에 낑겨넣어 알아서 나가길 떠미는 것처럼 힘든 사회생활을 했던 터라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고 끝나는.. 그냥 마트 캐셔 같은 거나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편한 일을 하고 싶다고 시부모님 앞에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평소 나의 고된 회사생활을 이해해 주시고 언제나 응원해 주시는 시아버지는 네가 그동안 쌓은 커리어도 좋은데 왜 어린 나이에 벌써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냐며 지금은 일에 지쳐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네가 하는 일을 좋아했던 모습이 선하다고 다시 한번 잘 고민해 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반면 반색하며 반기는 시어머니의 모습. 이제 니가 집안일이나 애 육아에도 더 참여할 수 있고 시간 관리하기 너무 좋은 그만한 일이 어딨냐며 세상 최고의 직업처럼 한동안 얘기하시는데 뭐 내가 먼저 꺼낸 말이니 나의 말에 동조해주시는가 보다 정도로 처음에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딸이라도 그렇게 흔쾌히 다니던 회사를 하루빨리 그만두라는 뉘앙스로 말했을까 싶어 감정이 좋지 않았다.


경기도에 살며 기차로 서울로 출퇴근하는 나 때문에 아버님과 함께 동업하면서 집 근처에서 일을 하는 남편은 당연히 주양육자로 살고 있었고 그 모습이 시어머니 눈엔 자기 아들만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나 보다. 나도 육아로 힘든 남편의 일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주말의 자유를 항시 보장해 주고 취미활동을 권장하고 있으며 평일 내내 출퇴근으로 3시간 남짓을 쓰며 기진맥진하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기 목욕과 빨래, 집청소, 재우기까지 하루도 남은 육아 잔업을 미룬 적 없이 열심히 사는 워킹맘인 나. 나도 놀다 오는 것이 아닌데도 항상 퇴근 후 바로 육아를 담당하는 남편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라 귀가와 동시에 쉬라고 말하며 정작 나에게는 챙기지 못하는 휴식을 남편에게는 넓은 마음으로 선사한다. 하루 24시간 내 모습을 본다 해도 시어머니가 자기 아들만 고생하는 것이라 여길지 가끔은 궁금하다. 물리적으로 더 먼 거리를 오가며 더 많은 돈을 버는 며느리에게 나 같음 더 고마울 것 같은데. “내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는 생판 남이며, 남편의 사장님은 시아버지, 즉 가족이잖아요? 생판 남 회사에서 일하는 나의 사회생활이 더 고되지 않을까요” 오늘도 속으로만 한마디를 던져본다.


아 그리고 얼마 전 시댁 형님과 시조카 생일이 겹쳐 식사자리에 갔을 때 일이다. 이 일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서론이 길어도 너무 길었네!


다음 달에 시조카가 준비하는 바이올린 음악회에서 반주자가 필요하단다. 형님이 직접 하기에는 직장 다니느라 연습할 시간이 없고 크몽이나 숨고에서 찾아봐야겠다는 형님의 말에 어머니가 대뜸 하는 소리. 며느리가 있는데 왜 남을 구하냐며 나를 가리킨다. 옆에 있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가요? 하며 의아해하는 순간 형님이 평일 낮에 열리는 행사인데 회사 다니는 며느리한테 연차를 쓰면서까지 어떻게 부탁하냐고 말이 안 되는 말을 왜 하냐며 면박을 주었다. (이때까지 든 생각, 왜 아무도 나에게 먼저 묻지 않고 둘이서 왜 그러는 걸까요. 저는 일단 피아노를 칠 맘이 없고 잘 치는 사람도 아닌데요) 그때 다시 시어머니가 이어받아 이렇게 말한다. “누구누구  이제 곧 회사 휴직해서 엄청 한가해져! 조카 행사 도와주고 좋지 뭐!” 그리고 이어지는 적막. “음.. 휴직해도 제 시간은 제가 알아서 쓸 거고, 말 그대로 휴직이라 제 건강 돌보기에도 바빠요. 그런 거 하러 다닐 시간 없어요. (할 맘도 없고요)” 참지 못하고 답변해 버린 내 말에 어색하게 웃는 시형님과 시어머니에게서 돌아온 말 “아 그렇지 그렇지 미안” 그리고 재빨리 더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전에 난 얌전히 놀고 있는 우리 아들에게 엄마 불렀어? 하며 자리를 피했다. 이 에피소드를 한동안 곱씹고 곱씹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거에 기분 나빠하는 내가 나쁜 며느린지. 아파서 휴직하는 며느리에게 저런 말을 함부로 하는 시가가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아니 왜. 건강이 좋지 않아서. 힘들어서 휴직하는 며느리 휴직 시간을 자기네들 마음대로 생각하는 거지? 여전히 나는 너무나 불쾌하기만 하다. 막말로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요, 나의 노동력을 요구하려면 정당한 대가를 주고 부탁을 하든지 배려있게 물어보든지 뭐든 하시라고요. 한가해지다니..내 몸 하나 건사하는 데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고 그런 내 시간을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말할 권리 없으세요. 제발 선을 넘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며 또 면대면으로는 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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