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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M Nov 04. 2023

기억의 온도, 학교의 온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게 있어요"


애정하는 벗이 연극 관람을 제안했다.


바쁜 시기, 왠 사치인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날 딱, 시간이 되었다. 잘 되었다 싶었다.


사실, 연극보다 벗이 보고 싶었겠지만 말이다.


제목은 '기억의 온도'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엄마와 아들 그리고 AI 로봇의 이야기였다.


프로그래머였던 아들은 엄마를 위해 AI 로봇을 개발했고,


AI 로봇은 갈수록 진화해간다. 점점 더 인간처럼 행동해간다.


AI를 개발한 아들은 점점 더 AI의 돌봄을 신뢰하고, 의존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AI가 이해하지 못하는 알츠하이머 엄마의 행동이 나타났고,


아들과 AI 로봇의 말다툼이 시작된다.


아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에게 내가 뭘 할 수가 있겠어.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AI로봇: "그렇지 않아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게 있어요."


연극은 아들이 알츠하이머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리고, AI 로봇은 더욱 진화해서 마치 알츠하이머 엄마의 딸처럼 행동한다.


이 연극의 스토리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이야기,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환자들을 대하는 가족들에게 던지는 응원의 메시지, 가족간의 사랑을 회복하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과학 연극이란 키워드를 내세운 이 연극에서는 과장되었지만 제법 그럴법한 인공지능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약, 인공지능의 진화가 인간이 필요한 만큼 이뤄진다면 그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그리고 기억을 더욱 많이 축적해가는 AI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멀쩡한 인간...


기억의 온도가 식어가는 엄마,


그리고 기억의 온도가 뜨거워지는 AI


그리고, AI 기억의 온도를 높이면서도 인간과의 기억의 온도를 높이려 하지 않는 인간


오히려 AI가 질문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게 있어요!

이 연극은 그 질문에 답을 하지는 않는다.


연극이 끝나고, 생맥주를 앞에 놓고 애정하는 벗들과 그 질문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답은 없다'가 답이었다.


오히려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색과 대화를 재촉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게 있어요'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들으며,


교육학자인 나는 '학교만이 할 수 있는게 있어요'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 '학교가 해야 하는 게 있어요'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게 있어요'라는 질문에 비해


'학교가 해야 하는 게 있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분명하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그동안 개별화를 얘기해왔다.


물론, 온전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그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 특히 공교육의 소명은


공동체 속에서 온전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돕는 것이다.


학교교육에서는 그냥 개별화가 아니라 공동체 일원으로 살기 위한 개별화인 것이다.


결국, 공동체성이 갊아 있는 개별화다.


그렇지 않은 개별화란...공공기관으로서의 학교가 확보하기 어려운 숙제다.


그렇지 않은 개별화란...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결코, 인공지능으로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도전과제는 아니다.


아무리 첨단 인공지능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연극 속 AI로봇처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인간에게 재촉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물론, 무언의 질문과 재촉이겠지만 말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는 것과 학교만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 속 개별화의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AI 기억의 온도뿐만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기억의 온도를 높이는...


그리고, 학교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 말이다.


같이 찾아보자. 지금은 그럴 때이다.


정말 그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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