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소소한 기억들은 잊혀진다. 한 시대를 소리 내지 않고 만들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잊혀진다. 우리는 강자와 승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보통의 여행에서는 그들의 기억에 주목하게 된다. 화려한 기억은 드러내지만 아프고 초라한 기억들은 감추기 바쁘다. 그래서 강자와 승자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간 이름 모를 영웅들, 대중들의 이야기는 쉽게 잊혀진다. 우연히도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지에 숨 쉬고 있는 대중들의 이야기를 찾아본다. 그리고 귀 기울여 본다.
부산의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말 그대로 강제동원되었던 이들의 설움과 아픔을 기억하는 곳이자 그들의 공헌을 기념하는 곳이다. 그들의 의미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기념하지 않았다면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대중들이 대중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대중에게 속삭이는 공간이다. 이들의 기억을 상상해 본 초등학생 딸은 눈물을 감췄다. 그를 바라보는 나 역시 그랬다.
그 당시 나라면 어떠했을 것인가?
'잊지 않겠습니다.' 잊혀진 이름들이자 기억되지 않는 영웅들이지만 후세대의 대중들이 그들을 기념하는 방법은 잊지 않는 것이다. 전쟁과 공권력에 의해 자신의 삶을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기억하는 주체는 여행자이지만 수많은 영웅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기록되는 기억
부산과 가까운 김해. 김해는 가야의 고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야'는 우수한 문화를 지닌 연맹왕국이었다. 철기를 바탕으로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오랜 기간 연맹 체제를 유지했던 한반도의 역사이다. 불행히도 그들의 역사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와 강자의 관점에서 서술된 탓이기도 하고,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다만 그들의 기억을, 그들의 삶의 유산들을 통해 예측할 뿐이다. 승자와 강자의 기록 속에서 발견되는 기억들을 소환할 뿐이다.
가야의 역사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해 가는 주변국들과 다르게 가야는 적지 않은 세월, 어떻게 연맹 체제를 유지하였는가? 가야의 여명과 패망 사이의 역사는 어떠한가? 그들의 진실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기록을 찾아보게 한다. 기록이 모두 진실을 증명하지 않을지라도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록은 기억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국립김해박물관
하찮은 기록도 기억되어야 한다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 가면 '패총전시관'이 있다. 오래전 사람들의 쓰레기 더미를 통해 당시 삶을 상상해보게 한다. 당시 사람들이 후대 사람들의 기억과 상상을 고려했겠냐만은 후대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글은 아니지만 쓰레기 더미가 일종의 기록이 되어 기억 소환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쓰레기에서조차 말이다.
세상에 의미 없는 기억도, 기록도 없다.
지금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 각자에게는 변변치 않을지언정, 각자의 훗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훗날을 위해 기억되어야 할 이유들이 있다. 그것이 승자의 역사 혹은 승리의 역사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기록한다. 지금의 감각과 감상을... 그들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기록하는 이의 기억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김해 봉황동유적지 패총전시관
*잊혀진 영웅, 장사리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 뒤에 감춰진 약자들의 이야기, 장사리 상륙작전을 찾아본다. 잊혀질 뻔한 영웅들을 이렇게나마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과 동시에 우리를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