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도 정치과정이 있나요?

학교 민주주의, 학생자치 그리고 학생들의 상상과 제안

by ESSAM

민주적인 국가, 민주적인 정치과정


정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방식에도 여러 유형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독재'가 아닌 '민주'를 좋아한다. 민주民主는 개인의 다양성과 인권을 존중하며 개인의 정치 참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현대국가의 대부분은 다양한 정치방식 중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 운영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며, 설득하고 타협하는 등의 생활방식으로의 민주주의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회는 개인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사회는 수많은 개인들로부터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회 형성에 대한 개인들의 영향력의 확대는 민주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사회가 만들어지던 시대와 달리 민주주의가 성숙된 사회는 개인들의 참여를 통해 크고 작은 결정들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정치과정이라고 말한다. 정치과정은 사전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 결정 과정', '공공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둘러싸고 다양한 정치 주체들이 서로의 입장과 가치를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즉, 민주적인 정치과정은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이자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정치과정의 단계를 투입과 산출 모델로 설명하기도 하고, 보다 구체적으로 이익 표출-이익 집약-정책결정-정책 집행-정책평가-환류의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이 정치과정에 참여한다. 시민으로서의 개별 주체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이익집단, 정당, 언론 등이 정치과정에 의견을 표출하기도 하고, 개별적인 의견을 집약하여 정책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은 국회, 정부 등의 소위 공권력을 갖고 있는 주체들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사회의 구성원의 요구에 반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으나 이러한 경우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흔치 않다. 이는 선거공학적인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自治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정치과정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개별주체로서의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의 무관심, 정치에 대한 무지, 극단적인 편향성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적인 정치 참여자(정당, 국회, 정부 등)들의 제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완성하기에는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제도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 사회의 중요한 것들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와 절차를 법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마련해 놓았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의사결정 과정의 룰 rule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Zum백과사전


출처: 티칭백과사전



그렇다면,
학생들과 관계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혹은 새로운 제도가 필요할 경우,
이 문제를 누가, 어떠한 과정으로 해결해야 할까?


학교 민주주의 그리고 학생자치


학생들과 정치 단원 수업을 하기에 앞서 이러한 질문을 나눠보았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나,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거나, 어떠한 제도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 학생들이 이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와 방법을 알고 있을까? 예를 들어,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고학년부터 식사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경우, 어떠한 과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수학여행의 존폐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고 할 때, 이를 학교 정책과 사업에 반영할 수 있는 공유된 절차가 존재하는가?


학생들의 대답은 제 각각이다. 교장선생님이 해결한다. 선생님이 해결한다. 간혹 학생이 해결한다는 답변이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묵묵부답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그 결과가 달라질까? 학생들의 의견을 물을 수도 있고, 교직원회의를 통해 결정할 수도 있고, 학교장의 결정에 따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따르고 있는 결정방식이 있을 테지만, 그러한 대부분의 경우가 모두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 다른 측면에서, 대부분의 학교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무엇인지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학교자치를 이야기하는 시대이지만 누가, 어떻게 그 자치권을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르다. 더욱이 법령상에서 자치를 촉진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자치의 영역에 참여해야 하는 주체와 권한은 명확하지 않다.


학생자치 역시 그러하다. 학생자치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으나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초중등교육법에서는 학생자치를 학칙으로 정할 사항으로 하였다. 학생자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구성원, 특히 학교장을 만난다면 학생들의 역할과 권한을 학칙으로 보장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담당자들의 열정으로 학생자치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많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학생자치권의 범위와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못하다.


초중등교육법 제17조(학생자치활동)에는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되며, 그 조직 및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0조(학생자치활동의 보장)에는 "학교의 장은 법 제17조의 규정에 의한 학생의 자치활동을 권장·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여야 한다."


초중등교육법이 위임한 학칙에 대해 한 학교의 사례를 살펴보자. 학생자치 규정 중 대의원회를 규정한 아래의 조항들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대의원회의 심의결정 권한과 학교장 결재권이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의원회가 결정할 사항을 학교장이 거부하는 경우에 대한 절차가 필요하다. 둘째, 대의원회가 결정할 수 있는 '본 회의 목적 달성을 위한 중요사항'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하다. 이것은 대의원회의 권한과도 연결된다. 권한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대의원회는 실질적인 권한을 자신 있게 행사하기 어렵다. 셋째, 대의원회의 심의결정 전후 과정에 개입하는 추가적인 주체들을 무시할 수 없다. 지도위원회(위원장), 학생회 담당교사가 대의원회의 주체성을 제한할 가능성이 존재한다.(이 수업에서 이러한 모순과 문제점들을 모두 다루지는 못했다. 교과수업의 범위를 벗어나기도 할뿐더러 시간 부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C학교의 학생자치 규정 중 일부



학교 정치과정 상상과 제안


정치의 의미와 목적을 학습한 학생들이지만 정치과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최근, 학교와 사회에서 이뤄지는 공론화 절차를 경험했지만 학생들이 그것을 정치과정과 연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학생자치가 오랫동안 강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자치의 구조와 권한 등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이번 수업은 국가 수준의 정치과정에 대한 학습을 통해 학교의 정치과정을 제안하는 것을 미션으로 하였다. 학생들은 앞에서 살펴본 국가 수준의 정치과정의 단계와 참여 주체들에 대해 학습했다. 그리고, 학교의 학생생활규정, 학생자치 규정을 살펴봤다. 학교의 정치과정을 제안하기 전에 현재의 정치과정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지를 살핀 것이다.(이번 수업에서는 시간 관계상 이 과정이 다소 부족했다.)


학교의 정치과정 제안은 사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기존의 정치과정이 갖는 한계와 학생(회)의 권한이 실제 존재함을 전제하고, 대안적인 정치과정을 상상하고 제안하였다. 학생들이 제안한 참여 주체들은 다양했다. 학생과 학생회는 가장 중요한 참여자였으며 학교장, 교직원회, 학부모회의 참여가 제안되었다. 게다가 일부 동아리들이 시민단체와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개별 주체들의 의견과 이익을 집약시켜주는 역할이 필요함을 주장한 것이다. 의사결정 방식도 다양했다. 교직원회, 학생회, 학부모회의 대표들이 모인 별도의 기구에서 결정하는 방식(간접민주주의), 전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결정하자는 방식(직접민주주의)도 있었다.


학생들이 제안한 학교 정치과정(2019년 1학년 학생팀)



이번 수업은 국가 수준의 정치과정을 통해 학교 정치과정을 탐색하고 제안하기 위한 취지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가 수준의 정치과정을 글로 익힌 학생들에게 실제의 학교 정치과정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학교 정치과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제안은 국가 수준의 정치과정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학습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자신의 삶의 문제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상, 이 아쉬움은 수업의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일 것이다.


정치과정을 논하기 앞서, 우리는 무엇을 자치의 영역에 담을 것인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자신의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들의 삶을 만들어 가는 핵심적인 도구이다. 자치의 영역에서 구성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해야 하는지가 정해져야 '어떻게'에 해당하는 정치과정이 실질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제안한 학교 정치과정(2019년 1학년 학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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