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코로나 19 사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한 학교와 교육자들은 그동안의 도전과 시행착오에 기반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온라인 학습이 변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줄 수는 있으나 변화를 위한 새로운 목적과 방법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촉구하는 실체적 경험들을 위기대응으로만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2020 교육부 정책자문 회의에서 발제한 원고를 일부 공유해봅니다.
1. 코로나 19 시대, 교사의 일상 2. 창덕여중의 미래학교 5년 3. 코로나 19 이후의 미래교육을 위한 제언
코로나 19 시대,교사의 일상
오전 8시 30분, E교사는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팀즈 플랫폼(MS)의 학급 채널에서 실시간 화상 조회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3년 동안 사용한 플랫폼이기에 E교사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온라인 조회가 끝나면, 교사는 팀즈 플랫폼에서 과제를 확인합니다. 학생들이 전날 제출한 과제를 확인하고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거의 반나절은 이러한 피드백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하고, 원인을 찾고 독려하기도 합니다. 오프라인에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을 지도하듯, 온라인 상황에서도 유사한 행위가 나타납니다. 동료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러한 행위들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행정업무, 생활지도 부담이 줄어든 상황에서 교사는 학습지도에 집중하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온라인 상황에서 수업은 더 이상 폐쇄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동료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교사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습니다.
특히, 1학년 신입생들은 정보담당부서교사와 담임교사가 제작한 플랫폼 활용&정보윤리 관련 영상과 2016년부터 해온 ‘기초와 적응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빠르게 새로운 플랫폼과 학교 분위기에 적응한 듯합니다.
교사는 원격수업을 시작하며 같은 교과 선생님들과 협업을 통해 통합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교사들은 하나의 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눴고, 각 과목에서 다룬 세부 질문과 자료를 선정했습니다. 이러한 교사 간 협력적 수업 준비와 실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여러 교과의 선생님들이 하나의 수업에 함께 들어가서 실시간 화상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협력적 수업이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들의 협력 그 자체가 자신들의 과제 수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도 말합니다. 선생님들 역시, 동료들과 협력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19 이후에도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창덕여중의 미래학교 5년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적인 의미를 만들어가는 학교 사례를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기반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학교가 한순간에 미래학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창덕여중은 2015년부터 미래학교 연구학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미래교육이어야 하는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교육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협업을 하고, 실행을 하는 학교였습니다. 미래학교를 만들어 가는 일은 공간의 변화, 에듀테크의 도입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가장 교육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학교가 되기 위해 학교문화와 교육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고 도전했습니다.
원격수업을 하게 된 창덕여중 교사들 모두가 수월하게 현재의 상황을 맞이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위기의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교사 간의 끊임없는 협업을 통해 기회로 만든 것은 교사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도전의식, 주인의식, 협력적 태도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지금의 창덕여중, 코로나 19 시대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학교가 된 것은 5년간 교육과정, 학교문화, 학습환경의 총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5년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고, 내부에서도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 교육청이 시도하는 사업들에 창덕여중 구성원들이 프런티어로서 활동함으로써, 동료 교사들을 지원하고 교육혁신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바라는 곳에서 창덕여중 구성원들이 기여하고 있음은 미래학교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이후의 미래교육을 위한 제언
E교사가 근무하는 창덕여중은 유토피아에 존재하는 학교가 아닙니다. 물론, 완벽한 학교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학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교 구성원들의 열정과 헌신뿐만 아니라 교사의 수업시수 경감. 학급당 학생 수 축소, 교육부와 교육청의 예산 지원 등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최근, 일반학교가 원격수업을 빠르게 준비하고 안정적인 상태에 이른 것은 한국 교육이 갖는 저력이 분명합니다. 또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현장을 지원한 교육부, 교육청,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BS 등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최근, 코로나 19 이후의 교육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된 것들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알파고를 통해 드러났듯, 학교교육의 실체는 코로나 19로 더욱 분명해진 듯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언을 드려봅니다.
우선, 에듀테크는 학교의 기본적인 학습환경으로서 도입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에듀테크 학습환경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미래사회를 위한 합리적 투자입니다. 무선인터넷과 기기 활용은 기본적인 학습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원격수업을 지원하는 에듀테크의 활용은 하나의 학습환경이며 학습효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에듀테크의 선정, 준비, 활용, 유지관리는 교육적 전문성을 요하는 일입니다. 즉, 에듀테크를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합니다. 실제, 일부 선진국의 미래학교에서는 테크 매니저들이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미래교육을 위한 총체적인 법령 정비가 필요합니다. 법률, 시행령, 훈령, 고시뿐만 아니라 각 시도 교육청의 지침 등이 미래교육적 상상과 실천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교육적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공식적 행위를 유도하는 법적 환경은 여전히 안정적인 행위에 머물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원격수업의 경우만 해도 교육부, 교육청, 학교의 권한에 대한 법적 해석이 달라 과도한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출석과 평가 인정 범위 등도 원격수업 상황에서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보수적인 법령해석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학교의 자율권을 인정하고, 과감한 혁신을 허용하는 법령 정비도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개별화된 학습,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는 학습을 진행하는 형태로 원격수업의 논의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학교 안에서의 인프라 구축 논의로 축소되는 것은 십수 년 전의 논의로 회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평균의 종말을 쓴 토드 로즈는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옛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비정상인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인 ‘뉴노멀’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 한국 교육은 잠시나마 옛 개념의 학교교육에서 벗어난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과거의 학교 개념에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써 어려움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코로나 19와 같이 기존의 학교 개념을 벗어나게 만드는 상황은 다시 올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와 방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칭송받는 것처럼 우리의 학교교육 시스템이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