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인종차별을 대하는 자세
똑같은 인종이 대다수인 한국에서 살아온 나는, '인종차별'이란 늘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친구도 주변인들도 모두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의 한국인이었기에, 살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그것이 이야깃거리가 된 적도 거의 없었다.
간혹 TV에서 교포 연예인들이 학창 시절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과 괴롭힘에 대해 얘기할 때면,
아, 힘들었겠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단지 한국인이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차별이 없었기에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공감대가 없었냐 하면, 눈을 찢는 흉내를 내며 놀리는 행동이 분명 아시안들을 향한 조롱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직접 당해보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왜 그토록 기분 나빠하는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처음 미국에 오고 나서도 나의 무지와 무감각은 계속됐다. 인종차별을 당하고서도, 그것이 차별인지조차 모른 채 지나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남편과 함께 한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리뷰가 참 좋았던 그 레스토랑은 유독 백인들이 많았다.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하고 갔지만, 손님이 많다는 이유로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먼저 테이블을 잡는 상황을 목격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구석탱이에 앉혀졌다.
나와는 달리 거의 한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온 남편은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아니, 우리가 먼저 들어왔는데, 저 좋은 자리는 다른 사람한테 주고, 우리는 왜 이런 구석탱이 테이블을 주는 거야? 이거 인종차별 아니야?
물론, 나도 기분이 나빴지만, 인종차별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이걸 인종차별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아주 핫하다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이 레스토랑은 지리적으로 한인타운과 가까워 아시안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고객들은 아시안보다는 백인들이었다.
우리는 예약된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고, 음식과 커피를 주문한 뒤 늘 그렇듯,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런데 유독 이 서버들이 우리 테이블에 한 10분에 한 번씩은 와서는 "필요한 거 없냐"라고 계속 물어보는 거다.
그들은 우리보다 일찍 온 옆 테이블은 지나친 채 매번 우리 테이블로 왔다. 목소리는 정중함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무표정과 친절이라고는 전혀 읽히지 않는 눈빛에서 불편함이 밀려왔다.
우리 보고 빨리 나가라는 거야?
우리 커피도 이만큼 남았고 온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옆에 테이블은 이미 식사를 다 마치고 수다 떨고 있는데
저기엔 물어보지도 않네.
결국 짜증이 난 우리는 계산을 하고 나와버렸다.
얼마 후 그 레스토랑은 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시안 손님을 차별한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이 식당, 아시안 손님들을 늘 한쪽 구석에만 앉혀.
좋은 좌석들은 백인 손님들로 채워져 있고, 아시안 손님들만 한쪽 코너에 배치한다니까?
심지어 일부 전 직원들은,
경영진으로부터 아시안 고객들을 밖 테이블에만 앉히라고 지시를 받았다.
라거나,
경영진으로부터 특정 인구집단이 들어올 경우, 레스토랑이 만석이라고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고 주장했다.
언론 보도와 항의가 이어지자, 레스토랑 측은 인종이나 배경을 이유로 차별한 적이 없으며, 모든 고객을 환영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패션 업계에서도 인종차별로 홍역을 치른 브랜드가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Abercrombie & Fitch.
대학생 시절, 한창 유행하던 아베크롬비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브랜드에 매료되었다. 키 크고, 몸매 좋은 금발의 백인 모델들,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성모델들.
'저 옷을 입으면 나도 저렇게 예뻐질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ㅋㅋ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백인 중심의 미적 기준을 내세운 이른바 Look Policy와 판매직에는 백인을 전면에 세우고, 유색인종 지원자들은 창고나 백 룸에 배치하거나 아예 채용에서 배제했다는 차별적 고용관행으로 집단 소송까지 갔다는 사실을. 결국 회사는 패소하고 합의에 이르게 된다.
사실이 무엇이든, 나는 그 레스토랑을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다.
아베크롬비 역시 CEO 교체와 리브랜딩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다고는 하지만, 더 이상 나에게는 매력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미국에 산 지 이제 10년이 넘은 지금,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건 아닐까?'
이제는 백인 손님이 많은 레스토랑에 가면 조금만 불편한 대우를 받아도, '내가 아시안이라서 이러는 건가?'라는 생각에 분노와 좌절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일 수도 있겠다. 몰랐다면 예전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을 괜히 마음에 담아두는 건 아닌지, 즐거워야 할 시간을 스스로 망치는 건 아닐지.
하지만, 한 번이라도 피부로 차별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이유 없이 배제되는 느낌, 간사하게 정중함과 교만함을 오가는 태도. 그 미묘함이 얼마나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지.
물론, 노골적인 차별은 드물다. 미국에서 인종차별로 인한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더 미묘하고 교묘해졌을 뿐이다.
어쩌면 미국에 사는 이상 인종이라는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득 먼 훗날 내 아이가 이로 인한 불이익이나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강해져야 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Priscilla Du Preez ��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