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이 뭐길래
이거, 10불은 당신 거예요.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뭐? 나 방금 팁 받은 거야?
여기서 잠깐.
나는 배스킨라빈스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그냥 손님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는 직원도, 사장도 아니라, 단지 쿠키 앤 크림 아이스크림이 너무 당겨서 마침 눈에 띈 배스킨라빈스에 들렀을 뿐이다.
우리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인 아저씨 한 명이 거의 10명에 가까운 아이들 무리를 이끌고 들어왔다. 직원은 먼저 들어온 나에게 뭘 먹을지 골랐냐고 물었고, 쿠키 앤 크림과 스트로베리 치즈 케이크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뒷 무리에게 먼저 계산하라고 순서를 돌려줬다.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왜냐고?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미국은 그냥 주문하는 법이라곤 없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어떤 아이스크림을 원하는지, 아이스크림을 담는 건 컵으로 할 건지, 와플콘으로 할 건지, 또 그 위에 어떤 토핑을 얹을 것인지에 대해 하나하나 다 주문하기 때문이다.
쩝... 시간 많이 걸리네... 근데 뭐, 내가 그러라고 했는데 할 말 없지...
아이들 무리를 이끌고 곤 아저씨는 계산을 하고는 후한 팁을 직원에게 선사했다. 그러고는 옆에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현금 10불짜리를 내미는 게 아닌가. 많이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허 참... 살다 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
그렇다. 미국인들은 참 팁에 너그럽다. 우리와는 다르게 팁은 당연히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면 금액도 더 높아진다. 그에 비해, 거의 평생을 한국에 살다 미국에 온 나는 팁이 그렇게나 아깝고 적응이 되지 않는 거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초반에는 지금보다 팁 금액이 훨씬 더 낮았다. 늘 점심엔 10%, 저녁엔 15% 룰을 고수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어디서 10% 팁을 내밀었다가는 짠순이 프레임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내 돈 내고 밥을 먹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산수 머리가 지독히도 없던 나는 15%의 팁을 계산하는 것도 왜 그렇게 어려웠던지... 심지어 세금도 계산할 때 부과된다.
예를 들어, 50불짜리 밥을 시켜 먹었다고 치자. LA의 Sales Tax는 9.5%이다. 그럼 $4.75가 더 붙어 내 계산서에는 $54.75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15%의 팁을 주고 싶다면, 음식 값 $50에 15%인 $7.5를 내면 된다. 하지만 내 계산서에는 세금을 합한 $54.75가 떡-하니 적혀있으니, $54.75의 15%인 $8.2를 팁으로 계산해서 주곤 했었다. 결국 $50 짜리 식사는 $63이 되고 만다.
당시에는 신용카드가 없었던지라 현금을 들고 다녔는데, 이런 금액 널뛰기를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가난한 인턴 신분으로 $5도 엄청 소중했기에... '그래, 오늘은 $50까지 쓰고, 내일은 $20 쓰고...' 이런 계획 따윈 불가능했다.
물론, 매번 밥을 먹고 나서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것도 참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식사를 했을 때는 더더욱 초라해졌다. 굴러가지 않는 내 산수머리를 타박하며 내 사정과 맞지 않는 후한 팁을 두고 왔던 기억도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게 바뀌었다. 점심은 18%, 저녁은 최소 20%의 팁이 일상화되었고, 영수증에는 '친절하게도' 18%부터 시작하는 팁의 금액이 적혀있다. 나같이 산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가 시작했나 보다. 단, 10%나 15%으로 시작하는 팁 금액은 적혀있지 않다.
나도 많은 게 바뀌었다. 대충 금액의 20%를 간단히 계산하고, 낮이거나 서비스가 별로였으면 약간 적게, 내가 기분이 좋거나 서비스가 좋았다, 혹은 저녁식사이면 그보다 좀 더 적어준다.
훗. 이쯤이야...
10년을 미국에서 살아내며 무수한 팁을 내었지만, 팁을 받은 건 또 이번이 처음이다. 내 기다림이 서비스인가? 미안해서 그런 건가? 저 아저씨가 술을 한 잔 하셨나? 근데 왜 기분이 좀 나쁘지?
별별 생각을 하며, 쿠키 앤 크림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뒤, 아저씨가 준 10불을 배스킨라빈스 계산대 위에 놓여있는 팁 통에 넣어두고 왔다.
고작 몇 불하지 않는 아이스크림에 이렇게 후한 팁을 내본 적은 내 인생 처음이다.
*커버이미지: Photo by Elza Kurbanov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