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ook Tired가 무례하다고?

관심과 경계 사이, 한국과 미국의 온도차

by Fresh off the Bae

어느 날은 내 보스가 유독 피곤해 보였다. 나는 스몰 토크를 먼저 시작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야심 차게 말을 걸었다.


You look tired today. Are you okay?
오늘 좀 피곤해 보이네요. 괜찮으세요?


나의 이 말에 보스는 유독 당황한 기색과 함께, "아 맞아, 내가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너무 힘들었어."라고 대답했다. 이 반응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도 한참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관련 콘텐츠를 보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상대방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말, "You look tired"가 미국인들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OH MY GOD!!!


어떡하지? 나는 친구도 아니고 심지어 보스에게 이런 말을 했으니...


다음 날 나는 보스를 보자마자 바로 말을 걸었다.


나: 저기 혹시, 그날 기억나세요? 우리 일대일 줌 미팅했던 날이요. 내가 보스가 꽤 '피곤해 보인다'라고 말했었잖아요.
보스: 아! 응 기억나지. 나 그날 진짜 힘든 날이었었거든. ㅋㅋㅋ
나: 정말 죄송해요.ㅠㅠ
보스: 왜?
나: You look tired라는 표현이 미국인들에게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정말 몰랐어요. 한국인들은 자주 쓰는 표현이거든요. 내가 그만큼 당신을 신경 쓴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오히려 긍정적인 표현이에요.
보스: 아, 그래? 아냐, 걱정하지 마. 기분 안 나빴고, 나 그날 정말 피곤했는데 네가 눈치채서 당황한 거였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ㅋㅋㅋ


보스는 호탕하게 웃고 넘겼지만, 그날의 내 코멘트는 꽤나 강력하게 기억에 남았던지, 시간이 꽤 지난 일임에도 내가 그 일을 꺼내자마자 바로 기억했다.


다행히 나의 보스는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놀랍게도 이민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문화차이에 대해 이해의 폭이 굉장히 넓다.


무례한 실수를 한 것치곤 상대방을 잘 만났던 것이다.




또 나의 착한 척 오지랖이 선을 넘었던 날이 있었다.


우리와 꽤 친한 부서의 동료가 얼마 전 수술을 해서 한동안 회사에 나오지 못했다고 전해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업무적인 요청사항으로 우리 팀 오피스를 방문한 그 동료. 나는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다.


나: 너 수술했다고 들었어. 괜찮아?
동료: 응 나 허리 수술을 했어.
나: 어머, 이제 괜찮아? 뭐 어디가 어떻게 아팠던 거야?


꼬치꼬치 캐묻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했던 나는 우리 팀 동료의 저지로 캐묻기를 중단하게 됐다.


배야, 그건 너무 무례해.


엥? 뭐가 무례하다는 거지?


생전 처음 남에게서 무례하다는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한국에서는 인사 잘하고, 어른들 공경하고, 예의 바른 말투와 행동만 몸에 배어있다면 무례하다는 말은 듣지 않는다. 물론, 우리 팀 동료가 꽤 친한 사이었기에 장난치는 말투로 나를 저지하긴 했지만, 내 말이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사실인 듯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가 만약 그 동료였다면? 내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어디가 아팠는지를 남들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제야 '내가 많이 무뎠구나, 그 동료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부분일 수 있겠다'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문제는 예의가 아니라 문화의 방향이었다. 우리는 관심을 표현하는 문화이고 미국은 경계를 존중하는 문화였다.


사실 미국에 살다가 한 번씩 한국에 나가면 굉장히 기분 나쁨과 기분 좋음을 동시에 느낀다. 나를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척, 지인들은 나를 보자마자 나의 달라진 외모에 대해 평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머, 미국 물 먹더니 예뻐졌다. 살이 빠졌나? 근데 피부가 왜 이래? 여기서 레이저 좀 받고 가!


물론, 그들은 나쁜 의도로 저런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는 건 잘 안다. 아니 오히려, 관심의 표현인지 모른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마다 저런 얘기를 하니, 한국 방문이 끝나갈 때쯤에는 마음이 꽤 지쳐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돌아오자 이상하리만큼 평온함을 느꼈다. 아무도 내 외모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타인의 삶과 외모에 대해 쉽게 언급하지 않는다. 설령 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지라도 굳이 말로 꺼내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다.


내가 무심코 건넸던 '피곤해 보인다' 역시도 한국에서는 걱정의 표현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는 외모 평가로 들릴 수 있다. 또 누군가의 수술 경위나 몸 상태를 자세히 묻는 것 역시, 상대가 먼저 공유하지 않는 한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10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머나먼 문화 차이 극복. 도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 걸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Sander Samm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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