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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Dec 16. 2020

쿠바 남자와 외국 여자의 결혼

두 번의 살사 수업, 루이스


사슴 같은 눈망울의 살사 선생 루이스, 그와의 첫 수업은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쿠바 살사를 이미 배워봤다고 했더니 함께 춤춰보자던 루이스. 난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남자가 리드하는 살사를 그가 리드하기 전에 먼저 예상하고 움직였고 가끔은 리드하는 대로 가지 않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운전면허 딴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운전하다 자신감이 붙어서 과속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 계속 그러면 안된다며 자기가 리드하는 거라고 강조하던 사슴눈 루이스. 한 시간 내내 난 그의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의 훈훈한 외모에 나도 모르게 광대 승천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내가 너무 뚫어져라 봐서 그런지 내 눈빛을 슬그머니 피했을 정도였다.


첫 수업이 끝나고 다음날 몇 시에 수업을 할지 정하려는데 원장 선생인 니콜라스가 말했다.


"내일부터는 나랑 수업할 거야."

"내일 수업 루이스랑 할 수 없을까? 루이스랑 하고 싶은데.."

"그럼 내일까지만 하고 그다음부터는 나랑 해야 해."

"알았어."


쿠바 아바나 니콜라스 살사 학원 명함


사실, 루이스와의 첫 수업은 지금까지 배웠던 쿠바 살사 연습 정도였지 새로운 패턴을 배우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슴 같은 눈망울 때문에 나도 모르게 사심을 품고 다음날 수업까지 루이스랑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수업까지 루이스와 함께했다. 수업 중간쯤에 니콜라스가 둘이 살사를 춰보라고 하더니 보다 못했는지 급 루이스에게 나오라고 하고는 나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온갖 쿠바 살사 패턴을 막 쓰기 시작하는데 중간에 막히진 않았지만 끊기지 않게 겨우 따라갈 정도로 이것저것 시도하던 니콜라스. 남들이 보기엔 무리 없이 추는 것처럼 보였다는데 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엉겁결에 살사 선생이 루이스에서 니콜라스로 바뀌었다.


이미 두 달 전에 쿠바 살사를 열 시간 정도 배웠고 당시 매일 잉글라테라 호텔 루프탑에 가서 살사 연습을 했던 나. 그 전에는 콜롬비아에서 온원 살사와 칼리스타일 살사까지 몇 달을 배우고 익힌 상태라 이미 니콜라스에게 살사를 배울 때는 2배속, 아니 4배속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일사천리로 수업 진도를 뺄 수 있었다. 중간중간 한국 여행자분들에게 내가 다니는 살사 학원도 소개해주고 구경하기도 하면서 학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니콜라스와 커피 마실 시간도 자연스레 생겼다.


어느 날, 학원에 자주 오던 루이스와 니콜라스랑 셋이서 커피 한 잔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주제로 대화하네? 쿠바에서의 녹록지 않은 삶과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주제였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만 가면 살기 좋을 텐데... “

“꼭 그런 건 아니야”


루이스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만 가면 무슨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듯이 말했고 니콜라스는 말도 안 된다며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물론 나도 니콜라스의 입장에 동의했다. 둘이 설전을 벌이다 너무 팽팽한 기싸움이 지속되어 나도 한 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많이 있다면 네 말이 맞을 수 있어. 굉장히 많아야 가능하지. 어쭙잖게 있으면 그 돈으로 너네 나라에 사는 게 나아.”


젊은 쿠바 사람들이 선진국에 가면 살기 좋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살기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거야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상태에서 가야 살기가 좋지 무일푼으로 가면 어딜 가나 살기 어렵다. 쿠바 사람들이 불만을 많이 갖는 것이 자기들은 뼈 빠지게 일해서 한 달에 30불 남짓 버는데 너네들(외국인)은 돈을 쉽게 버는 것 아니냐 이거다. 아주 작은 돈으로 배급을 받고 본인들이 누리는 무상의료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누구에게나 돈은 귀중한데 누구의 돈은 쉽게 번 것이고 누구의 돈은 어렵게 번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쿠바가 특히나 상식 밖의 임금체제를 갖고 있는 것인데, 그걸 어찌 비교하리? (내년부터 쿠바에서 임금도 오른다고는 하는데 얼마나 오를지, 그만큼 물가 상승도 따른다고 함)



가끔 니콜라스와 시간 약속을 하고 잉글라테라 호텔 루프탑에서 살사를 추기도 했다. 한 번은 루이스와 함께 왔는데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루이스는 스물셋에 무려 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마흔셋의 독일 여자와 결혼을 해서 5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지금 이혼 중이란다. 지금 부인은 독일에 있다고. 부인이 갖고 있는 부동산이 많아 그걸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는 까사(숙소)도 운영하고 있었다. 무려 에어비앤비 슈퍼 호스트로 까사가 등록된 에어비앤비에서 부인과 함께 찍은 프로필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누가 봐도 아름답지만 딱 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쿠바에서 가장 보기 쉬운 커플, 젊은 쿠바 남자와 나이 든 외국 여자의 모습이었다.


재력 있는 중년의 외국 여성이 젊은 쿠바 남자와 결혼해서 진짜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즈니스를 위해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보통의 젊은 쿠바 남자와 열몇 살 이상 차이나는 나이 든 외국 여자 커플은 모든 재정적인 부담을 외국 여자가 맡는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직업 없이 한량처럼 사는 쿠바 남자들이 많다. 어디 가서 자기가 다 돈 쓴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쿠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여자가 모든 돈을 다 쓰고 산다고 절대 생각을 못할 테니까.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젊은 동남아시아 여자가 나이 든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며 친정에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쿠바는 그 성별이 반대이고 나이 든 여자와 결혼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본인의 마음이 바뀌거나 다른 여자가 생기면 헤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이고 쿠바 남자의 마초적이고 자존심 센 성향 때문에 외국 여자는 본인 돈 다 써가면서도 비위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살사추러 자주 갔던 잉글라테라호텔 1층 외부


루이스의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의 부인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였어.”


지금 운영하는 까사는 원래 루이스 꺼였을까? 아니면 마흔 넘어 스무 살 어린 쿠바 남자와 결혼하며 집을 사준 것일까? 에어비앤비를 찾아봤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나온 까사는 여러 채였다. 사랑이었을지 비즈니스였을지 아니면 사랑으로 시작해서 비즈니스를 함께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함께 찍은 프로필 사진만 보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가장 찬란했던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 루이스는 자기 꿈을 위해 머지않아 유럽으로 떠난 댔다.


스물여덟에 이혼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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