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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영 Jan 17. 2024

솔담배

오랫동안 비워져 있는 아버님방을 치우다가
카세트테이프 상자 안에서 담배를 발견했다.

솔과 청자.

아버님이 담배를 태우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박스 안에 솔과 청자라.

솔담배를 보니 중2 때 친구의 작은방이 생각났다
어릴 적부터 알았던 동네친구인데
하얀 얼굴에 긴 머리,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도 하는 예쁜 아이였다
자기 얼굴에서 토끼처럼 나온 앞니가 제일 보기 싫댔지만
난 그마저도 아주 예뻐 보였다

하루는 자기네 집에 가자더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작은 창을 열고는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피었다

살짝 문 이 사이로 나오는
가볍고 호리호리한 연기,
아 연기가 참 황홀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담뱃갑을 톡톡 쳐 올리더니
한 대를 빼준다
너도 한번 해볼래?
주저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더니
손안에 물려줬다

겁났지만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두근거림
들키지는 않을까 심장이 쫀쫀해지면서도
지금 아니면 절대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

친구는 내가 입으로 호로록 빠는 걸 보더니
야야, 가슴깊이 빨아야 진짜 참맛을 느끼지
이봐, 나처럼
후ㅡ

따라 해보니 머리가 찡하고 뱉는 숨에선
기침만 나왔다
그래도 내가 뱉은 그 연기바람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좁은 친구의 방에 담배연기가 차오르고
눈도, 가슴도 벅찼던 기억
그 계집애 콜록대는 나를 보며
깔깔대던 소리도 생각난다

눈은 바람에 휘몰아치고
라디오에선 닥터지바고의 영화음악이 나오고

그맘때 결단코 우정을 맹세하였던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내가 오늘 어쩌다 발견한 솔담배처럼
그이들도 어느 날 어쩌다
내 생각 한번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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