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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영 May 17. 2024

혼자, 로키

첫날 도착한 밴쿠버는 약한 비가 내렸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우울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민을 장려하는 다민족 국가.

나도 여기에선 이방인일 뿐.

저들은 나를 이방인으로 생각할까,

여행자로 생각할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나라를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일까.


돌아온 지 일주일쯤 지나니 한 것과 본 것들 중

남기고 싶은 것들만 걸러지는 것 같다.


첫날 만난 제균씨

바다 건너 본 흐린 날의 밴쿠버 풍경


언덕에서 내려다본 캘거리 시내의 전경

편히 가는 맥줏집

문 닫기 전 늦은 시간에 가면

반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바비큐집


단 도넛에 쓴 커피

길을 달리다 멈춰서 봤던 작은 곰

불멍이 가능했던 벤프의 숙소

침대에 누워들은 칙칙폭폭 삑삑거리는

화물기차의 기적소리


동네 허름한 맥줏집 달력에 붙어있던 그 산이

마침내 내 눈앞에 펼쳐져있던 모습

설퍼산 기상대 정상에서 청혼하던 남자와

그가 내밀던 반지를 끼려는 여자

그리고 환호하던 그의 친구들


맛있는 햄버거, 또 맛있던 햄버거

꽁꽁 언 호수의 눈밭 위를 끝까지 걸어

남은 생의 다짐을 하게 했던 레이크루이스

벤프 다운타운의 서울옥 감자탕과 소주 두 병

크리스마스마켓의 스노볼

벤프 스프링스 호텔에서 마신 다디단 아이스와인과

마지막날까지 기다려 내리는 것 같은,

내 마음을 알아채고 내리는 것 같았던 눈까지


날씨도, 장소도,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온전했던 추억으로 맞춤하듯 마음에 남았다.


이 여행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의 기장이 우리 비행기는 곧 인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을 듣고서야 말이다.


무엇이든 무릅쓰고라도

다음을 기약하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All that thanks,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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