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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영 Dec 22. 2023

속초의 작은집

딱 일 년 하고도 이틀 전에 봤던
그 야경 때문에 속초에 작은 집을 샀다.

아바이마을에서 늦은 저녁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갯배 선착장 앞에 서있는데

설악대교에 조명이 켜있는 모습아래로
검은 바다의 은비늘 물결을 헤엄치며 나오는 하얀 고깃배,
우측 청초호 주변을 둘러선 불빛이 켜진 여러 살림집과 가겟집들,
그것들 더 너머로는 병풍처럼 검게 두른 웅장한 설악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니
별처럼 흩뿌린 어선들의 어등

산, 바다, 호수에 고깃배의 불빛까지
정말 그 야경이 너무나 멋지고 값졌다.

첫눈에 반한다는 얘기를
풍경을 보고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그냥 그 모습에 첫눈에 반해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마음속에 들어앉은 풍경을 이유로
집을 사버렸다

33년이 된 오래된 주공아파트는 아파트만큼 오래된 주인이 살고 있었다
오래된 주인은 고치면 꽤 쓸만하다며
집도 보지 않고 계약한 내게 자랑반 위로반으로 말해주었다

현관문과 마주 있는 벽장, 둘이 들어가면 엉덩이가 맞닿을 화장실, 연탄보일러가 있던 부엌뒤 광자리까지,
잘만 만들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근처 인테리어 가게에 가서 알아서 잘해주시라
부탁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완성된 집을 어제 다녀왔다.
일주일 전에 내린 눈이 아직 집 앞 나무 위를 덮고 있었다.
집은 미리 받았던 사진 속의 집과 아주 같았다.
지금 당장 속초에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언젠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놓은 것처럼
마음에 위로가 됐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조금 더 여유가 되면
조금 더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올 수 있겠지.

집을 나와 전경을 보니, 중학교 때 이사 왔던 집과
아주 닮았다.
아주 오래전, 새 집에 이사와 엄마로부터 내 방을 소개받았던 그때의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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