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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선포와 순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하상바오로 신부가 정하상 바오로 본당에 왔습니다! 마치 집에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세례를 받았는데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께서 제 세례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103위 한국순교성인들 가운데 한명으로 축하받는 것이 아쉬웠지만 하상바오로 성인의 삶을 묵상하면서 제 주보성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정하상이 일곱살 나이에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형 정철상 가롤로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참수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린 동생 정혜와 어머니 유 세실리아와 함께 풀려났으니 그에게 천주교 신앙이란 가족을 앗아가고 말로 못할 고난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상바오로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국경 11회, 중국 북경까지 9회나 왕복하면서 조선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교구가 설립되었고 마침내 엥베르 주교님과 사제들이 조선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엥베르 주교님은 정하상이 사제가 되기에 합당하다고 여겨 그에게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쳤는데 그의 나이 39세 때였습니다. 그러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하상바오로와 가족들이 모두 잡혀 모진 고초를 겪고 순교하였는데 그의 나이 42세였습니다.


하상바오로 성인이 이루지 못한 꿈인 사제가 된 저는 하상바오로 성인의 삶을 닮고자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삶의 모토로 삼고 살아갑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오늘 또 다른 주인공인 사도 베드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리더입니다. 불같은 성질로 예수님께 꾸지람도 듣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배신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시 상기해 봅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부제 때 로마 성지순례를 갔었는데 스카비 투어로 성베드로 대성당 지하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원래 로마 외곽의 늪지로 베드로가 죽은 뒤에 초세기 신자들의 지하무덤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곳을 한참 걷다가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 다다른 가이드는 이곳에서 손과 발이 잘린 오십대 남성의 시신이 발굴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에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감히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유해가 확인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머무르고 여기에 기도하고 여기에 순교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 위에 말 그대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두 기둥인 바오로와 베드로는 둘 다 복음 선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둘 다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복음 선포와 순교없이 지금의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대학생들과 잘 지내고 있던 중에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볼티모어 주임신부로 와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대한 적도, 바라지도 않았던 성전건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6개월이 지나 다시 선배 신부님께서 연락이 오셨습니다.


내가 필요로 한 곳에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저는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소심한 사람이기에 그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성전건립 모금을 다녀간 사제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한번은 어떤 젊잖은 신부님이 성전건립 모금 미사 강론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어떤 본당에 돈 많은, 그러나 자식 없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할머니에게는 강아지가 한마리 있었답니다. 신심 깊던 할머니는 자신처럼 강아지도 천국에 갔으면 하고 바랬기에 하루는 본당신부님을 찾아가 강아지에게 세례를 주십사고 청했습니다. 본당신부는 당황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강아지 세례를 주면 성전건축기금으로 1억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본당신부는 강아지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뒤 마음의 가책을 느낀 사제는 주교님을 찾아가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주교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씀하셨습니다. "그 강아지가 견진은 언제 받나요?""


그날 신부님은 그 강론 하나로 역대급 모금을 해 갔습니다. 그후에 노래하는 신부님, 섹소폰 부는 신부님이 성전건립 모금을 위해 다녀가셨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강론도 보통이고 노래나 악기도 안 하셨는데 미사 후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파셨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강론 중에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저는 이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건립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보낸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6-8).


비겁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다시 불태워야 함을 깨닫고 나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악명높은 범죄가 많고 낙후된 볼티모어 지역에서 복음 선포를 위해 꼭 필요한 성당을 짓고자 합니다. 1995년부터 성전건립을 준비해 왔고, 2014년에 발족한 건축위원회는 코로나 시기에도 매주 줌 미팅을 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볼티모어 한인성당 건립은 지역 복음화를 위해 400명 신자들이 30년을 갈망하며 준비해 온 일입니다.


바오로와 베드로처럼 복음 선포와 순교라는 토대 위에 새성전을 건립하고자 합니다. 순교자 신앙으로 볼티모어에 복음의 빛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힘이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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