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자비주일

대자대비(大慈大悲)는 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의 넓고 큰 자비심을 뜻하며, 모든 중생에게 기쁨을 주고(慈) 고통을 없애주려는(悲)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과 연민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하느님 역시 대자대비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 3,16).


오늘 요한 복음 또한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대자대비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대자대비하심의 표상이시며, 예수님 부활은 대자대비 그 자체입니다.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처음으로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시며, 새로운 제 3천년기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온 인류에게 주신 부활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은 없었을 것이며, 죄의 어둠 속 무덤에 갇힌 우리는 죽음만을 기다리는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심장에서 하느님의 대자대비가 흘러나오고, 그 자비의 샘에서 우리는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토마스는 예수님 부활을 믿지 못하는데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시며 성령의 숨을 불어넣고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는 자비의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이는 바로 대자대비하신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에 명확히 드러납니다. 제대 앞에 있는 '하느님의 자비 성화(Divine Mercy Image)'에서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은 골고타의 희생과 성체성사의 피이며, 흰 빛은 세례성사와 성령의 은사를 상징하는 물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은 지금 하느님의 대자대비가 절실합니다. 세상의 전쟁과 폭력, 증오는 오직 자비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웅장한 군함이나 고도화된 무기, 군사력은 절대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며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오직 자비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사랑으로 이 세상의 절망과 죽음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들어가시어 비폭력과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음과 치욕의 십자가는 자비와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대자대비하심을 통해서만 우리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주일 오후 3시 파우스티나 성녀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의 성시간을 가지며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우리는 이제 자비의 사도가 되어 하느님 자비를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먼저 하느님의 대자대비하심을 믿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예수님 자비의 심장으로 초대합니다. 병자성사를 통해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대자대비하심이 드러날 것입니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그분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을 바라보며, 자비의 샘에서 하느님의 치유를 받으십시오.


아픈 것은 피하면 좋겠지만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우리는 아픔을 통해 자신을 벗어나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대자대비하심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