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러움에 낚였다

by 봄의순간

“아이고 안쓰러워. 어떻게”

안쓰럽다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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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러워 보이는 누군가가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움직이거나 행동했다.

자신의 약함과 힘듦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안쓰러움이 자극이 되어, 상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힘이 들어도 하는 이유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곤 했다

엄마가 안쓰러워서 무언가를 해야 했다

큰아이가 안쓰러워서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려했다

남편이 안쓰러워서 집안의 모든 일을 다했다.


“안쓰러움에 많이 낚였다”

안쓰러운 감정이 들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하고, 화도 나도 억울하기도 했다.


엄마는 피해자였다.

아버지가 돈을 못 벌어서 엄마가 벌었고,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도 엄마는 집을 지켰다. 온갖 불행을 떠 앉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며 무능력한 남편과 가정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가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고 가정을 이끌고 안정이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피해자였다. 그리고 약자였다.

힘들어할 때마다 나의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의 힘듦을 대신해 주었다

나의 전화기는 엄마를 위해서 늘 열려있었다. 안쓰러움과 힘듦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아빠 닮은 나쁜 년이 되어있었다.


안쓰러움은 나를 움직이게 하였고, 움직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였다. 무언가 하면서 따라오는 억울함과 죄책감이 공존했다. 안쓰럽고 불안정한 눈빛의 엄마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의 눈빛을 거절하면 비난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행하지 않으면 안쓰러운 엄마를 그대로 두는 매정한 딸이 되었다.

요즘 엄마랑 거리를 두는 중이다. 여전히 엄마는 힘듦과 안쓰러움을 무기로 나를 움직이고 싶어 한다. 오십이 다되어 가는 나이에 비로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안쓰러움에 낚인 것이다.”


엄마는 본인의 불안과 불행을 자식들에게 다 풀어내고 살았다.

불안함에 시달리느라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본 적이 없다. 삶이 나아져도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하다. 지금도 자신의 불행과 불안, 안쓰러움을 무기 삼아 자신들을 행하게 하려고 한다. 조금씩 엄마의 삶에서 나오고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안쓰러움에 잠식되어 행동하고 나면, 가슴속에 묵직한 불편감이 계속되었다. 행하지 않은 순간 죄책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동하고 나면 체기가 내려가지 않았다.


“안쓰러움을 먹이로 주면서 먹이로 살아왔다”

나는 안쓰러움의 먹이였다. 그렇게 살아왔다. 생각보다 오랫시간 동안 삶의 한 줄기였다

안쓰러움의 사전적 정의는 “손아랫사람이나 약자에게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쳤을 때 마음에 미안하고 딱하다. 어린 나이에 내 병 수발을 드는 아들의 모습이 무척 안쓰럽다. 손아랫사람이나 약자의 딱한 형편이 마음이 아프고 가엽다.”였다.


안쓰러움의 정의를 보고 화들짝 놀랬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단어와는 완전히 다른 뜻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 누군가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었다. 어린 내가 부모를 보고 느껴야 하는 감정보다는 어른이 어린아이의 도움을 받았을 때, 나보다 약자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약자였던 내가 엄마를 보살필 때 엄마가 느껴야 하는 감정 있다.

그런데 내가 느끼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마음과 힘듦을 헤아리며 “안쓰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 고행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에게만 국한되었으리라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나의 삶 곳곳에 퍼져있었다.


안쓰러워서 큰아이를 무조건 적으로 챙기나 힘들어서 화를 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안쓰러워서 모든 것을 다하고 남편 탓을 하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대인관계에서 따뜻한 사람이라는 착각으로 사람들에게 행하고 힘들어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안쓰럽다는 것에 너무 많은 어린 시절의 역사가 들어있었다. 그 이면에 억울함과 죄책감의 공존이 섞인 아주 복잡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안쓰럽다는 감정을 쪼개지 못하고 섬세하게 바라보지 못했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감정을 뭉뚱그려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알아차리자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온다. 안쓰러움에 낚이지 않고 살아갈 내 모습이 그려진다.


(2025.1.8 개인분석중 떠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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