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맛이 있으신가요?

by 봄의순간

편안할 때는 언제인가요?

-편안할 때를 색으로 떠올리면 무슨 색인가요?

-편안한 때를 냄새로 떠올리면 무슨 냄새인가요?

-편안한 때를 소리로 떠올리면 무슨 소리인가요?

-편안한 때를 내 손으로 느껴지는 감촉으로 떠올리면 무슨 감촉인가요?

-편안한 때를 맛으로 떠올리면 무슨 맛인가요?



“누구나 살아가면서 편안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편안함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질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내가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편안함이 필요할 때, 내가 편안함이 언제가 필요한지를 활용해 보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편안한 마음일 때를 좋아한다. 편안한 사이, 편안한 집, 편안한 관계등 불편해지는 마음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불편한 마음이 들면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든다.


편안한 맛이 무엇일까?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혼자 궁리 끝에 찾은 것이, 겨울날 따뜻한 방 안에서 혼자 귤을 까먹으며 좋아하는 예능을 보는 것이라고 떠올랐다.


맛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연결된다. 엄마는 시골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손맛을 가진 사람이었다.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그중에 해산물로 만든 요리와 김치맛은 일품이었다. 엄마는 잘하는 특기를 살려, 동네 공장에 취업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밥을 해주었다. 그 회사 회장이 총애할 정도로 밥맛은 끝내주어 20년이 넘게 근속하였다.


음식을 잘했지만, 집에서 음식 만들기는 좋아하지 않아 보였다. 항상 힘들어했다

아버지와 농사일을 끝내고 들어온 엄마가 남자들은 힘든 일 하고 밥상만 기다리는데, "나는 또 밥을 해야 하네" “이놈의 밥 해 먹기 싫다” 푸념 아닌 푸념을 토해냈다. 더불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딸년들이 일하고 들어오는 동안 뭐 했어, 밥도 안 해놓고”


밥 하는 게 일이고, 집에서도 밥을 해야 하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엄마의 밥에는 노고와 한탄이 들어가 있었다. 항상 압력솥에 달그락 거리는 밥을 먹지만, 그 밥을 먹는 일은 편안하게 와닿지 않았다. 맛은 있어도 편하지가 않았다. 피곤한 엄마의 수고를 먹는 일 같았다. 그렇게 음식이라는 것에 차곡차곡 부채감이 늘어갔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밥을 처음해 본 것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가 4학년이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열 살이나 열한 살에 압력솥에 밥과 감잣국을 끓였다. 그리고 계란 프라이 등이었던 것 같다. 밥은 당연히 설익었고, 감잣국은 맹탕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내 딴엔 해보았으나, 먹을 수가 없어서 엄마가 다시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밥하라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엄마 옆에라도 서있으며, 거들어”라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서있으면 뭐 할까,,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음식에 대한 기억은 편안했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모님이 아무도 없을 때, 동생들과 낄낄 거리며 까먹던 귤맛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질 뿐이다. 더불어 엄마가 한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먹는 것인지 꾸역꾸역 입에 넣는 것인지 모를 때도 많았다. 더불어 나는 잘 먹는 돼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음식을 하는 게 당연하게도 즐겁지 않았다.

음식이라는 것에 부정적인 경험이 가득 쌓였기에, 남편이 음식에 일손을 보태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화가 났다. 맞벌이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과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음식을 해 먹고사는 일은 나에게 풀리지 않은 숙제 같아서,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음식 앞에서 한숨을 쉬곤 하였다. 첫째가 태어났다. 첫째는 오감이 예민한 아이 민감한 아이였다. 음식을 가리는 게 많아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여전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아이가 맛있어라고 해주는 날은 별로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집안일을 하며 음식을 열심히 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다양한 역할을 하며 음식에 정성을 기울여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내 안의 가득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음식이라는 행위를 즐기지를 못했던 것이다. 나에게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은 편안함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즐겁지 않은 밥상이 편안할 수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는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 너무나 행복해하였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큰아이는 맛있다는 안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곧잘 피력하였다. 맛있고 없고, 무엇을 먹고 싶고 표현을 잘하였다. 편안한 밥상이란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면 되는구나 알아차리기도 하였다. 그러자 나의 마음도 음식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은 내려갔다. 좋아하는 것을 사 먹어도 좋고, 함께 있는 자리가 편안하고 행복하면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음식에 나의 감정보다는 엄마의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태어난 둘째는 순둥 한 기 길을 가져 무엇이든 해주어도 엄지 척을 내민다.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어"라며 나의 음식에 조금씩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는 존재가 더 생기게 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 죽 먹고 싶어"라고 한다. 큰아이는 흰 죽, 작은아이는 닭죽을 좋아한다. 콜록거리는 아이를 위해 죽을 쑤는 일이 행복해졌다. 먹고 기운차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기억이 긍정적인 기억에 옅어 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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