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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만의 Nov 03. 2021

나에게 프랑스란?인종차별의 나라『첫 번째 이야기』

풍부한 문화, 자연에 어울리지 않는 인성

프랑스를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는 루브르도 아니고 샤넬도 아니고 에펠탑도 퐁네프의 다리도 아닌 인.종.차.별 이다.


15년 전 회사분들과 함께 프랑스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패키지여행 중 일박 이일 정도만 프랑스에 머물러서 그랬는지 프랑스에 대한 내 기억은  '길거리에 개똥이 많군', '모나리자 그림이 생각보다 작군',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 건 거의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군' 정도였다. 인종차별을 당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 때야 첫 번째 유럽 여행이고, 유럽 사람들이 동양인들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눈치도 코치도 없었을 때였기 때문에 누군가 인종차별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종차별인 지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여학생들이 '유럽 남자들은 한국 여자들을 좋아하나 봐, 가는데 마다 말 걸고, 인사하고 막 그러더라. 유럽 가서 살아야겠어!' 하는 자랑 반 경험 반의 얘기를 간혹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들은 '벨라벨라 ~~!'라는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가 유럽인에게 인기가 많은가 봐' 하는 우쭐한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살았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은 기억이었을 텐데, 유럽에서 살다 보니 그들의 말과 행동들이 인종차별과 여성비하, 무례함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져 던져진 개똥 같은 언행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곳, 체코 프라하의 남자들을 예로 들어보자.(예라고 해 봤자 전수조사를 한 것도 아니라, 몇 가지 에피소드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에 불과하니, 체코 남자의 일부를 유럽 남자 전체로 매도할 마음은 없다.)


체코는 민주화되는 과정이 벨벳처럼 부드럽다고 해서 벨벳혁명으로 이름 지어진 벨벳혁명을 통해

1989년 공산국가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정치체제를 바꾼 나라다.


내가 갑자기 체코의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민주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88 올림픽이 1988년도에 개최되었으니, 그 일 년 뒤인 1989년도에 민주화가 시작된 나라가 2010년대라고 뭐 그리 엄청나게 대단하게 미국적이고 오픈마인드겠는가?

사람들은 정말 조용하고 차갑다. 친해지고 나면 당연히 정 많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지만 첫 만남의 표정들은 차갑기 이를 데가 없다.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는 짓지만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과하게 인사하는 법이 없고 이유 없이 실실거리며 말을 거는 법이 없단 말이다.


프라하 센터(센터는 시내의 개념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시내나 번화가를 센터라 지칭하더라)에 나가면 동양인 여자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참 많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유럽인들이 동양인을 좋아한다더니 진짜군'하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인사가 기분이 나빠졌다.

'머, 왜? 어쩌라고 자꾸 말을 걸어?'


아호이!(체코 인사), 니하오!(짱ㄲ.. 중국 인사), 사와티캅(태국 인사까지!)


그 언짢음은 우연히 한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 그 정도가 최고조를 달했다.


프라하 블타바 강변(한강 같은 곳이다)을 산책을 하는데, 정말 모델같이 예쁜 금발의 체코 여인이 조깅을 하고 있었고(바비인형의 모델이 체코 여성들이다. 정말 예쁘다!), 그 맞은편에  체코 남자들 무리가 마주 보며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들이 그녀에게 '도브리덴~!' '헬로우!' '뷰티풀'이라고 탄성을 지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내 예상을 참혹하게 깨고 너무나 희한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 남자들 모두가 살짝 곁눈질을 하며 발그스름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젠틀하게 지나가는 것 아닌가!!!

아닛!! 이게 뭐야!! 우리나라랑 똑같잖아!!!


인간 사는 세상은 비슷비슷한 것이 우리나라도 연예인급 미인이 지나가면 그녀를 힐끗힐끗 곁눈질만 할 뿐 아무도 대놓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플러팅을 하지 않는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나에게 '도브리덴~! '아호이~!' '니하오~!' '사와티캅~! ' 까지 하던 그 시끄럽던 체코 남자들은 다 어디 갔느냐 말이다. (미안하다. 그 당시 내 나이 40이었지만 유럽 사람들은 동양인 나이를 잘 모른다).


야 이 시키들아! 소리 지르라고!! 인사하고 환호하라고!!!!


그냥 내가 쉬워 보이고, 동양인이라 눈에 띄고, 자기들이 집적거려도 경찰에게 신고하거나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자를 데려와 '오빠! 저 사람들이 나한테 집적거렸어. 혼내줘!'라고 말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나에게 플러팅을 한 것이다.

동양인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동양인의 신비로움에 반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아.. 이 어린놈의 시키들이...


뭐, 지나고 나니 이 정도 인종차별은 귀여운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도 어렸을 때 백인들에게

'헬로우~헬로우~ 미스터 몽키'라는 노래를 부르며 장난을 치지 않았던가.(나..나.. 나만 그랬던 건 아니겠지?)

지금 생각하니 우리가 치기 어린 장난으로 했던 그것 역시 백인에 대한 심각한 인종차별이었다.


위의 일화들은 기분이 좋지는 않으나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예로 분류될 수 있겠다.

이제 드디어 본 주제로 돌아와서 내가 왜 프랑스를 싫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유럽에 살 때 인종차별을 가장 심하게 겪은 나라는 프랑스였다.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는 워낙 다인종이 사는 곳이니 다들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기 바빠서 동양인이 지나가는지 외계인이 지나가는지, 강아지가 지나가는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곳이지만 남부 프랑스는 파리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단, 프랑스 남부는 정말 아름답다.


프랑스 여행 중 파리만 여행 한 사람들은 프랑스라고 하면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 루브르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 특유의 분위기, 자유로움, 예술가적인 아우라 이런 것들을 떠올리겠지만,

콜마르, 스트라스부르, 에귀샤임 등 알자스 지방으로 대표되는 남부 프랑스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은 프랑스 자연의 아름다움,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벨이 빨래하고 노래 부르던 동네 같은 작은 시골 동네들의 아름다운 집들, 작은 성당들의 아름다움 같은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프랑스 파리를 다재다능하여  비지니스에 성공한 샤넬백을 든 여성에 비유할 수 있다면, 알자스 지방은 아기자기 알록달록 들꽃을 머리카락에 장식하고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자연 속의 소녀에 비유할 수 있다. 여하튼, 온갖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도 너무나 예쁘다. 대규모 성당의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도 경이롭지만 조그만 성당의 그 귀여운 파이프 오르간이라니! 내가 일본 여자였다면 '카와이~ 카와이~!' 하며 작게 탄성을 지르며 그 마을들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귀여움을 표현했을 일이다.

콜마르가 예쁘긴 정말 예쁘다.


그러나...

그  풍부하고 아름다운 자연, 건물들, 아기자기한 조경들의 장점을 모두 퇴색시켜 버리는 커다란 단점이 있었으니!

순박할 거라 기대했던 남부 프랑스인들의 인종차별이 그것이었다.


유럽 살이 1년 차에는 나도 아무런 눈치를 보지 않고 '꺄하하하, 여기 너므너므 좋아혀. 아름다워혀~ 사진찍어여~ 폴짝 뛰어혀~ 한바퀴 돌아혀~ 홀롤롤로로로 넘 좋아혀~!!' 하며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사방팔방에 민폐를 끼치고 여행했으나(미안하다. 길막하고 사진찍는 가족이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매일매일 관광객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을 설쳤던 것으로 보이는 현지인이 3층 자기 집 창문을 열고 관광객들에게 뭐라고 소리 지르며(체코 말이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ㅅ..ㅂ..) 관광객들 머리 위로 물을 한 바가지 부어버리는 것을 보고 난 다음엔,

'아~ 이곳이 나에겐 관광지이지만 저 사람들에겐 생활의 터전이고 쉬어야 하는 안식처구나. 나는 그 안식을 방해하고 있는 바퀴벌레같이 귀찮은 해충일 뿐이었네.'

라고 생각하고 어떤 곳을 여행하든지 그 지역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용조용 다녔다.


프랑스 남부 지역을 여행할 때도 당연히 '조용조용 민폐를 끼치지 말자.' 하며 사부작 사부작 먼지인 듯 공기인 듯 다니며 여행을 했는데,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인종차별의 스타트를 여기서 끊을 줄이야.


프랑스 콜마르를 방문했던 그날은 마침 한국도 여름방학기간이어서 한국에서 여행 온 언니네와 함께 프랑스 남부의 콜마르를 여행하고 있었다. 길을 막고 사진을 찍는 것도 민폐라 생각했던 우리는 조용히 성당을 찾아 이동 중이었는데 두둥! 한 할머니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주전자 아줌마'같은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버티고 서는 게 아니겠는가!


뉴욕에서도 핑크핑크한 정장을 입고 핑크색 모자를 쓰신 멋쟁이 할머니가 두둥!하고 나타나 고압적인 자세로 내 앞에 서서는 강한 말투로 무어라 말을 하길래 긴장하며 가만히 들어보니

'엄훠나~ 자기야! 뉴욕에 온 걸 넘나 환영해!! 사랑해! 위 아 더 월드란다~!' 하며 손키스를 날리는 환대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 나는 '이것도 비슷한 상황인가?' 하고 무슨 환영의 인사를 해주려나 하는 기대와 함께 할머니의 행동을 주시했다.


콜마르의 주전자 할머니는 뉴욕의 핑크 할머니와는 시작부터가 달랐던 것이,

우리를 보면서 일단 한숨부터 푸욱~ 내쉬었다. 그러면서 우리 일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이라고 크게 소리 내며 한 명씩 한 명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카운트를 하는 게 아닌가!

 

'자기가 영어로 숫자를 셀 줄 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건가? 정신이상자인가?'  별 생각을 다 하면서

'그래도 끝엔 인사라도 하고 가겠지?' 하고 생각한 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으며 그 할머니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우리 옆을 지나가버렸다.


이건 뭐지? 말로만 듣던 문화충격인가? 이 나라에서는 저게 환영의 인사인가? 아님 인종차별인가? 분명히 기분은 나쁜데 따라가서 따지기에는 애매하고. 우리 무리의 숫자를 센 이유가 우리가 너무 사람이 많다는 뜻인가? 단체 관광도 아니고 시끄럽게 한 것도 아니고 길 따라 조용히 걷고 있었을 뿐인데? 왜 우리에게 저런 행동을 한 거지? 머릿속에 물음표 수십 개가 떠 다녔지만 여행의 기분을 망칠까 봐 그 상황에 대해 더 깊게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체코에 돌아와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 한편의 찝찝함과 궁금함이 가시지가 않길래 내가 그때 다니던 영어학원의 수업시간에 그 상황에 대한 질문을 했다.(유럽인의 행동에 대해 이해가 안 가면 유럽인에게 질문을 하라!)

'프랑스에서 어떤 할머니가 우리 일행을 한 명 한 명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카운트를 하고 한숨을 쉬고 지나갔는데 이게 어떤 상황이었던 같니?'라고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이 똥그래지며

'정말? 너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카운트를 했다고?' 라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음~ 유럽인들이 듣기에도 아주 모욕적이고 기분 나쁜 일이 맞네.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 게 아니네' 하고 생각하며

'응, 한 명 한 명 손가락으로 수를 세며 고개를 흔들고 지나갔어'라고 얘기를 하니

그 수업의 담당 선생님이

'하아~ 넌 인종차별을 당한 거야. 우리는 사람에게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를 카운트하지 않아. 내가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미안해.'

선생님과 학생들의 해석은 우리가 인종차별을 넘어선 동물 취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내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수를 카운트할 때 눈으로 하나하나 짚어서 수를 세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카운트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아.. 잣 같은 인종차별이여.

지금도 그 할머니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과 그 당당한 주전자 같은 포즈가 잊히지 않는다.


주전자 할머니.

그렇게 살지마. 너나 너의 가족들이 아시아로 여행 오면 내가 '헬로~헬로~ 미스터몽키!!'라고 노래를 불러줄지도 몰라.

지구촌이 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인종차별을 하니? 그건 프랑스인의 자존심이 아니라 무식함의 발로야.


그렇게 내 프랑스 남부 여행의 아름다운 치맛자락에는 주전자 할머니의 얼룩이 오점으로 남겨졌다.


그다음 편에서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인종차별 및 지하철에서 일어난 황당했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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