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랜만의 Nov 04. 2021

인종차별의 나라, 프랑스 『두 번째 이야기』

애증의 프랑스


나는 아무래도 프랑스에 살짝 삐져있는 상태인가 보다.

좋다고 하기엔 밉고, 싫다고 하기엔 그래도 미련이 남는 이 기분은 뭘까?

(물론 프랑스는 내 존재도 모른다. ㅋ)


프랑스만 가면 뭔가 부정적인 사건이 생기는 것 같은 이 느낌은 그냥 징크스 같은 걸까? 근거는 없지만 뭔가 기운이 맞지 않는 그런 느낌?


프랑스는 매 해 6월, 1월에 대대적인 세일을 한다. 특히나 겨울 세일 기간은 프랑스 사람들도  대거 회사에 휴가를 내고 백화점으로 달려갈 정도로 빅세일 기간이다. 쇼핑 휴가라니! 패션의 나라 프랑스 다운 휴가이다.

우리나라처럼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가격표를 붙여놓고 그중 안 팔리는 몇 개만 꼴랑 이십 프로 정도 가격을 다운시킨 후 세일이니 페스티벌이니 나발만 거창하게 불어대는 그런 세일이 아니라,

처음엔 삼십 프로로 시작해서 이주 뒤엔 오십 프로, 사주 뒤에는 칠십 프로 팔십 프로까지도 가격이 다운시켜 재고를 거의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통 큰 세일을 한다.


체코에서 프랑스까지는 왕복 비용은 십만 원 남짓. 겨울 빅세일은 십만 원의 눈곱만 한 비용을 들여 달려갈 만한 이벤트였다. 쇼핑 파티를 연 것 같은 그곳에서 파리지엥들과 함께 쇼핑을 하는 그 기분은 셀럽들 속에서 잠옷만 입고 파티를 참가한 듯 아주 초라한 기분일 테지만 평생 가야 한번 참가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파티인데 잠옷이면 어떠랴!

뭐, 사실 아무도 나에게 '제발 우리의 쇼핑 파티에 참석해주세요'라는 초청장을 보낸 적도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X쥬, 산 X로, 자딕 X볼테르 등 한국에서는 감히 쳐다도 못 볼 옷들을 십만 원대에 살 수 있는데 그 거저먹는 할인판을 빠질 수가 있나! (나는 절대 사치를 일삼는 사람이 아니다. 15년 간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십만 원이 넘어가는 정장을 입은 적도, 명품가방을 산 적도 없었다)

명품 원피스, 코트 등이 십만 원이면 한국의 웬만한 브랜드의 오분의 일가 격이네? 품질은 엄청나고? 어머나! 이건 꼭 사야 해!!

평생 입을 옷 다 사야겠다! 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프랑스로 출전을 했다.

 


프랑스 파리의 그 세일로 난리 난 백화점들에서는 점원들이 너무나 친절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등 뭘 물어봐도 차갑기 그지없는 대꾸가 돌아오는 점원들과는 달리 프랑스 백화점 점원들은 친절함의 정도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 가게에 점원만 열명씩 있었고,  그녀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나에게 '뷰티풀, 골져스, 판타스틱'을 연발했다. 본인들이 더 '뷰티풀 하고 골져스 하고 판타스틱하면서. ㅋ

옷 한 벌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가 입어보면서 '사이즈가 좀 안 맞나?' 생각만 하고 있어도 어찌 알았는지 귀신처럼 내 사이즈를 찾아서 옷걸이에 걸어주고 나가면서 윙크를 한번 날려주고, 이 옷은 생각보다 좀 야하다 싶은 생각을 하는 순간 귀신같이 나에게 딱 맞는 좀 더 점잖은 옷을 세벌씩 찾아서 옷걸이에 걸어주고 나가며 천천히 입어봐 하고 말해주는, 아주 신출귀몰하게 일을 잘하는 점원들이었다.(나는 아무런 요청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백화점의 여성 옷가게 점원들에게 쌍 따봉을 날린다.

결국 나는 그녀들의 칭찬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지 않고 시내 구석에 있는 조금 더 저렴한  X쥬, 산 X로, 자딕 X볼테르 아웃렛에서 옷을 사긴 했지만...(아웃렛 세일이 가성비는 최고다!)


그렇게 옷을 여러 벌 산 후 쇼핑백 네다섯 개를 들고 퐁네프 다리를 건너 파리지엥과 다르지 않은 기세로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탔다.(이미 인터넷으로 파리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법을 숙독하고 난 후였다. ㅋ)


퇴근시간이 겹쳐 사람들이 꽤 지하철 내부에 많았으나 열차의 앞쪽 끝부분에 내가 앉을만한 자리가 눈에 띄어 그 자리에 앉으려고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내 뒤에서 함께 그 지하철을 타던 열 살쯤 되는 예쁜 여자아이 한 명과 열다섯 살쯤 되는 장난꾸러기 같이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이 나를 마구 밀치면서 내 앞으로 끼어드려 하는 게 아닌가!

'무례하구나, 얘들아. 쇼핑에 지친 아줌마는 좀 앉아야겠다.'

생각하며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남자아이가 재빨리 내 앞을 막아서면서 나를 못 들어가게 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아~ 자기 여동생을 앉히려고 하나보다. 그래, 착하구나. 동생을 앉히려무나'하고 생각하며 먼저 앉으라는 의미로 미소를 지어줬다.

그런데 그 남자아이가 길을 터주며 실실 웃으며


 '네가 앉아. 안으로 들어가!' 그러는 거다.


'에? 왜? 뭐. 그래 알았어. 앉으라고 하니 앉을게'

하고 앉으려니 다시 어깨로 나를 밀치며 밖으로 밀어낸다.

'얘, 왜 이러지? 아.. 처음부터 자기들이 앉을 거였는데 내가 먼저 앉으려고 해서 기분이 나빴던 건가?'

생각한 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너네가 앉아~'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니 또 그 남자아이가 시비를 걸듯

 '들어가, 네가 앉아!'그러는 거다. 하..

 

그렇게 앉으려면 못 앉게 어깨로 밀고, '얘야, 그냥 네 동생 앉혀'라고 말하면 또 나보고 앉으라 그러고, 그래서 앉으려고 하면 또 못 앉게 어깨로 밀고. 그 실랑이를 세 번을 더 하고 난 후 화가 난 나는


 '스탑. 나 안 앉을 거야. 그만해!'


라고 말했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여동생이 자기 오빠 팔 밑으로 쏙 들어가 혀를 날름 내밀고 앉는 것이다.

'하.. 사는 게 참 쉽지 않구먼! 저 어린놈의 자식들이 어른을 놀리고 있네' 생각하고 한숨을 쉬며 주위를 돌아보는데

 

'이건 또 뭐야! 내 가방 안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팔이 하나 쑥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그날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은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 쇼핑백처럼 생긴 쇼퍼백이었고, 그 가방에는 잠금장치가 없어, 사실 손을 넣으려면 한 열개의 손은 넉넉하게 넣을 수 있는 가방이었다.

 아니 근데, 아무리 커도 내 가방이 다른 사람 팔을 수납하는 용도는 아닐터인데. 내 한 팔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고 다른 한 팔은 그날 쇼핑한 쇼핑백을 잡고 있는데, 내 가방 속에 들어와 있는 저 팔은 도대체 누구의 팔이란 말인고..

처용가를 부르는 남편의 마음처럼 망연자실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을 보며 그 팔을 따라가 보니 방금 전 그 두 아이보다 서너 살쯤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의 눈이 깜짝 놀라며 내 눈과 마주쳤다.


' 너 지금 뭐하니?'

 

하는 내 질문에 당황한 그 여자아이는 내 가방에서 손을 다급하게 빼더니

'내가 뭐? 내가 뭐? 내가 뭘 했는데?' 하면서 뭔가 프랑스 욕인듯한 단어들을 섞어 쓰며 발뺌을 했다.

아니 손 뺌인가?

'네가 방금 내 가방 속에 손을 넣고 있었잖아. 내가 니 손이 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걸 봤다고'라고 말을 했더니 이 녀.. 자 아이가 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발로 팡팡 차면서 뭐라 뭐라 프랑스 말로 씨부.. 말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는 얌전하고 참하다는 말을 듣지만 화가 나면 눈이 뒤집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나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프랑스 욕에는 한국 욕으로 대응해줘야만 한다라는 생각에 "야, 이 쌍쌍바 같은 여인아. 이 정신이 가출한 도둑 여인이 훔치려고 하는 걸 들켰으면 얌전히나 있든지 어디 감히 내 가방을 발로 차!'라고 쌍욕을 퍼부어주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내가 인종차별을 느낀 부분은 이 지점에서였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내부 좌석은 열차의 앞뒤 부분은  우리나라처럼 사이드 쪽에 좌석이 배열되어 있지만 열차의 중간 부분은 우리나라 버스처럼 좌석이 배열되어 있어 그 소매치기가 내 가방 속 지갑을 훔치기 위해 내 가방을 뒤적거리는 것을 버스처럼 배열된 좌석에 탄 사람들은 다 봤을 것이고, 그러면 누구라도 내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하고 증인을 눈으로 찾고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그 소란을 구경하고 있던 그 많은 눈들이 일제히 아래를 보면서 딴청을 피우는 것이었다.


분명 모든 상황을 봤을 텐데, 방금 전까지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이 일제히 방관자가 되는 걸 보고 나는

'아.. 여기서 내가 칼에 찔려 죽는다 한들 나를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없겠구나. 내가 프랑스 사람이었더라면, 아니 피부색만이라도 자기들과 비슷했다면 저렇게 모른 척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세에 눌렸는지, 아니면 자기가 내릴 역이 그곳이었는지 그 여인은 그다음 역에서 내리며 메~롱을 시전 하였고 그 메롱을 보면서 아.. 어디서 본 메롱인데 생각하는 찰나 수 분전 나를 자리에 앉지도 서있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남매가 나를 밀치며 그 도둑 여인과 함께 내렸다.

와... 그 세명이 한패임을 그때 알아차린 나는 분노하며 '아, 저런 이십 색깔 크레파스 같은 놈들을 봤나'를 시전 했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 없었고 그 열차 안의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유일한 동양인 외톨이로 망연자실 목적지까지 찌그러져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객들이여! 파리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할 것이며 소매치기를 만나더라도 주변에 있는 누가 내 편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과잉 반응하지 말고 적절하게 얌전한 동양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시길..


버텨봤자 소리 질러봤자 인간에 대한 실망 말고는 남는 게 없더라.


외국에서 오래 유학한 사람들이나 외국에서 오래 지난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하는 경고를 무시하지 마시라.


'외국에서 동양인은 강아지 아래 서열이며, 강아지보다 못한 동양인이 맞아서 죽어간다 해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절대로 인종차별이나 부당함에 맞서서 싸우지 말아라'


씁쓸한 결론이지만 현실은 그렇더라.


너무 나쁜 인간들의 몇 가지 에피소드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도 있더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더라' 정도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전 편에서 말했듯이 내가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로 유럽인 전체를 인종차별자들로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경험을 통해 내가 결론 내린 한 가지 사실은


 '나는 프랑스인이 싫.. '


두 편이 너무 어두운 유럽 생활에 대한 에피소드였으니 다음번에는 분위기를 바꿔서 독일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 쾨니그제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오겠다.


산 속에 있어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독일을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 강추하고 싶은 곳이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 유럽에서 차를 렌트해 꼭 가보시라고 말해주고 싶은

숨겨진 보물 같은 곳.


쾨니그제 호수.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프랑스란?인종차별의 나라『첫 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