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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만의 Nov 05. 2021

내 숨소리마저 소음이 될 것 같았던 호수, 쾨니그제

쾨니그제


독일,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다 보면 ○○○See라는 표지판을 간혹 볼 수 있다.

See? Sea? 바다?

오호~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바다를 씨~로 말하나 봐! 하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나대다가,

에? 독일에 바다가 있다고? 독일 북부면 모를까 독일 중남부는 바다가 있을 리가 없잖아. 라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간다.

(독일은 중남부 도시들은 바다와 인접할 수 없는 내륙도시들이다.)


그럼 저 See는 뭐야? 대관절?


See는 호수다.


독일, 이탈리아에서 호수를 see라고 하는데 영어처럼 '씨'라고 읽는 것이 아니라

독일어로 '제'

이탈리아에서도 '제'라고 읽는다.


Königssee는 쾨니그제(독일)

Gardasee는 가르다제(이탈리아)처럼

See는 호수다


통상 우리나라의 호수를 생각하면 댐이 연관검색어처럼 함께 떠오르며 대청호, 충주호처럼 물을 가둬놓은 실용적인  이미지만 생각나는데,

독일, 이탈리아의 호수들은..

아아.. 정말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름답고 거대했다.


독일을 차로 여행한다면 쾨니그제를,

이탈리아를 차로 여행한다면 가르다제를 꼭 한번 살폿 방문하길 바란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쾨니그제호수.


쾨니그제를 발음할 때는 부디 연인에게 휘파람을 불어주듯,  귓속말하듯 속삭이며 작게 말해주길 바란다.

쾨니그제- 하고.


은은하게 물결치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 하나라도 들어 퐁 하고 떨어뜨려보면 돌은 호수 깊숙한 곳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조용히 떨어진다.


 '타이타닉'에서 할머니가 된 로즈가 목걸이를 떨어뜨렸을 때처럼, 타이타닉호가 침몰되기 전 그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넘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로즈와 잭의 모습으로 돌아가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고요함, 신비함, 고즈넉함.


그 가슴이 아릴 정도의 먹먹함이라니..


물속에서 곤히 잠을 자는 왕녀를 감히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조용조용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도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시종들처럼 우리는 숨조차 죽이며 그 호수의 고요함을 즐겼다. 가을을 즐겼다.


스르르륵, 스르르륵, 노를 저어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나룻배를 탄 듯 아무 소리 없이 흘러가는 보트.


보트조차도 전기로 가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남기지 않는다.


찰싹찰싹 노를 젓는 소리만 남기며 조용히 미끄러져 가는 나룻배처럼.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산처럼 높이 서 있는 높은 돌담.

산속에 있으니 산자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돌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요정이 돌담 위에 올라가 앉아 치렁치렁 늘어진 파아란 옷자락이  물속에 드리워진 줄도 모르고 망중한을 즐기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형상의 돌담과 호수.


요정을 찬양하듯 보트의 어린 선장이 트럼펫을 불어주는데 트럼펫 소리에 화답하듯 요정의 메아리가 호수에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치듯 울린다.


트럼펫 소리가 멎으면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그 뒤에 따라오는 더욱더 조용해진 호수의 고요함을 듣는다.


그곳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귀에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우리는 쉬잇~하고 숨을 죽이고 세계 최고의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의 자세로 예술을 즐기듯 가을 오후 쾨니그제 호수의 정적을 관람했다.



기다란 호수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는 동그랗고 빨간 탑을 가진 아주 작은 성당이 있는데 이곳이 쉼터의 역할을 한다.


보트에서 잠시 내려 발을 담그고 호수를 즐길 수 있게 쉼터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어 반짝반짝거리는 하늘색이 되어버린 호수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수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발이 들어가 있는 이곳이 호수 안인지, 하늘 속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가만가만 다리를 흔들며 호수의 차가운 부드러움을 즐기자.


요정과 손잡고 유유히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난 듯, 꿈에서 너무나 깨어나기 싫지만 이제 시간이 다 되어 현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의 마음으로 나는 무거워진 발을 선착장에 올려놓았다.


내 숨소리마저도 무거운 파편이 되어  

호수 속으로 퐁하고 가라앉을 것만 같았던

퀴니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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