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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만의 Nov 08. 2021

프라하 200평 주택에서 살아보기

엄훠낫, 200평이라닛!(렌트지만)


체코 프라하로 이사를 가면서 내가 가장 기대한 것은 집의 규모였다.

정원 포함 200평, 건물 내부는 1,2층 합쳐 100평. 넓은 실내 수영장이 딸린 집.

상상도 해 본 적 없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광대가 승천할 일이었다.

4년을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니(렌트지만)!!


부푼 가슴을 품고 체코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내려놓고 둘러본, 내가 살 집은 정말 넓었다. 광장처럼 광활했다. 이 정도면 거실에서 킥보드도 탈 수 있겠는걸?

(나중에 거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다. 진짜로.)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집은 기본 세팅되어 있는 식탁, 소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하고 소리 내면 메아리라 울릴 정도였다.

1층에는 복도의 끝에서부터  화장실, 빨래방, 수영장, 거실 두 개(한 곳에는 굴뚝 딸린 벽난로가 있음), 주방의 순서로 공간이 채워져 있었는데,

거실과 주방 사이에는 아일랜드 식탁이 있었고 8인용 나무 식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넓은 현관의 사이드에는 전용 주차장이 있었고 그 크기는 차가 두대가 들어가고도 양 옆으로 물품들을 쌓아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저 멀리 아득한 곳에 화장실이 있다. 멀다. 다리 아프다.


나사처럼 꼬인 계단을 총총 올라가면 중앙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 세 개와 화장실 하나가  있었고,

아이들 방 사이즈는 웬만한 아파트 거실 하나 사이즈, 안방은 웬만한 아파트 거실 두 개 사이즈였다.

욕실 또한 삼십 평 대 아파트의 거실 두 개만 했고 세면대가 두 개,  원을 사분의 일 등분 해 놓은 커다란 욕조가 하나, 중간에 책상을 놓고 방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넓었고 하늘색의 너무나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유럽 집들 특유의 반원 모양의 창문.


웅~하고 서큐레이터가 돌아가고 있는 넓은 실내 수영장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라니!


한국 집 여느 방문과 다르진 않은 일반 나무 재질의 문을 열며 이건 무슨 방일까 하고 내부를 봤는데 그 안에 웬만한 안방 여섯 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수영장이 있었던 것이다. 대박이었다!

아이들 대여섯 명이 들어가 놀아도 충분히 끝에서 끝까지 수영하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집 주변을 둘러싼 정원을 돌아보니 캠핑을 한다 해도 텐트를 다섯 개는 족히 칠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였고, 잔디가 깔려 있었으며(겨울이라 비록 잔디의 색깔은 황토색이었지만), 아파트에서 살았던 우리로서는 크든 작든 정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할 지경이었다.


너무나 좋아서 방방 뛰고(층간 소음조차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 이방 저 방을 돌아다닌 후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우리는 이제부터 이 집을 사랑하기로 했다! 넘나 러블리한 집 아닌가!(다시 말하지만 렌트다.)


우린 프라하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데워진 마음으로, 그러나 우리의 기대보다는 좀 추운 바닥을 견디며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 집이었다) 대충 바닥에 이불만 깔고 첫날밤을  보냈다.


시차로 새벽 세시까지 말똥말똥 천장만 쳐다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여긴 어디며 나는 누구이고 도대체 몇 시인 거야?


여긴 프라하고, 나는 나고, 아침 여덟 시였다.


하아.. 두 달 전에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이 도착한 것이다.

12시간 비행을 마치고 자고 일어나서 바로 이삿짐을 부려놓아야 한다니!


너무 추워 대충 코트를 찾아 껴입고 세수도 안 한 상태로 대문을 열었다.


그. 런. 데! '세상에나!! 이게 웬일이람, 웬일이람?'


체코의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저씨가 아니라 키가 190센티정도 되는 건장한 금발 모델 다섯 명(체코인,  폴란드인)이었다.

'내가 이런 허드레를 일 시켜도 되나~' 싶은 정도의 외모를 가진!(한국 가서 모델을 하지 왜 여기서 이삿짐을...)


프라하에서는 일꾼도 참 러블리했다.


하지만 일머리는 확실히 한국 아저씨들이 나았고, 체코 모델들은 짐을 가볍게 들고 모델이 워킹하듯 우아한 발걸음으로 이층까지 짐을 나르는 일은 기가 막히게 완수했으나, 가구를 다시 조립하고 서랍을 제자리에 넣고 자질구레한 살림을 정리하는 일에는 영~잼병이었다. 게다가 영어도 안 통하는 상황.

역시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기는 힘든 것인가!


여하튼, 손짓 발짓을 해가며 이사는 진행되었고,

시작된 일은 누가 깽판을 치지 않는 이상 끝은 나게 되어 있다.

순조롭진 않았지만 외국에서 백 퍼센트의 만족도를 기대할 순 없었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하고 이사를 마친 후, 나는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을 풀고 옷들을 집어넣고 냉장고를 정리하며 이사 후 따라오는 허드렛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프라하 집에 대한 사랑이 조금 식는 일이 벌어졌으니!!


정전이 되었다!!!


한국에서 정전을 겪어봤던가?

가난하게 살던 어린 시절 이외엔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 어쩌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집주인에게 전화해

'Blcakout! It's a blackout!'이라고 외치는 수밖에.

제발 빨리 와서 고쳐달라고 집주인에게 애원하고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엄마.. 너무 무서워. 살려줘!!'의 표정이었다.

주변에 가로등도 없어 아예 깜깜하니 아이들이 공포에 질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 어쩌나.. 뭘 해야 애들 신경을 어둠에서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건 핸드폰 불빛과 여기저기 쌓여있는 이삿짐 박스.

랜턴? 그날 이사를 했는데 랜턴을 어떻게 찾아.


아, 집에 원래 세팅되어 있던 향초들이 있었어. 그걸 이용해 보자!

그래서, 초에 불을 붙이고 핸드폰 불빛을 이용해 박스에 있던 이런저런 옷들을 꺼내

....


'패션쇼'를 했다...


패션쇼?? 엥?

난데없이 웬 아닌 밤중에 '패션쇼'였냐고?

난데없는 어둠에 무서워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ㅜㅜ


나는 이사 박스에 있던 희한하고 말도 안 되는 바캉스용 드레스, 여름용 모자, 목도리 등을 이용해 알록달록 밀라노 패션피플처럼 치장을 해줬고, 기다란 거실을 런웨이 삼아 핸드폰 불빛을 싸이키 조명처럼 비춰주면서 패션쇼를 진행했고,

다행히 아이들은 너무나 재미있어했고, 엄마 옷을 이것저것 입어보며 패션모델이 된 것처럼 런웨이를 걸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렇게 '한밤중 패션쇼'를 즐기던 와중 초면인 집주인이 도착했고 '도브리, 도브리(Dobry)'를 외치며 두꺼비집을 요래조래 손보더니 전기를  공급해줬다.


체코 사람들은 도브리(Dobry)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쓴다.

도브리(Dobry)는 It's good도 되고, It's O.K도 되고 인사할 때도 Dobry den이라고 쓰이는 좋다는 뜻의 형용사이다.

난 4년을 체코에서 살고 한국으로 출국할 때 까지도 거의 체코어를 익히지 못했지만, 웬만한 상황은 'Dobry'면 다 통했다. 프라하에 여행 갈 일이 있으면 '도브리(괜찮아), 데꾸이(고마워)' 이 두 단어만 외워서 가도 도브리, 도브리(좋아, 좋아)!


프라하의 첫 집은 너무나 러블리한 집이었으나, 정전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2년 계약을 끝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사하게 된 연유는 '체코 할아버지의 플러팅' 및 '200평 주택에서의 끊임없는 고장들' '도우미 없이 200평 주택에서 산다는 것'에서 밝히기로 하고, 일단은 프라하의 첫 집이 너무나 내 마음에 쏙 드는, 러블리했던 집이었다는 것까지만 말해두기로 하자.

 

어쨌든 2년간 잘 지냈고,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했던 집이다. 프라하의 집. 2년 동안 데꾸이(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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