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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만의 Nov 13. 2021

10년 묵은 폴라티를 꺼내 한참을 보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평년보다 겨울이 빨리 시작되어 급하게 벽장에 쌓아두었던 겨울 옷 박스를 꺼냈다.

급한 대로 아이들 옷을 먼저 정리하고 한 숨 돌린 후 천천히 내 옷을 정리했다.


일주일에 한 번을 밖에 나갈까 말까 하고 거의 츄리닝 차림으로 집에서 지내는 터라, 내 옷 정리는 짜달시리 급할 것도 없었지만 이틀, 삼일 씩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 박스들이 보기 싫어 일단  침대 위에 겨울 옷들을 다 끄집어내어 하나씩 둘씩 정리하기로 했다.


아이들 옷은 작아지면 곧바로 버리거나 친척들, 친구들에게 물려주거나 해서 바로바로 정리를 하곤 하지만 내 낡은 옷들은 누구에게 물려주기도, 계속 입기도 참 곤란하다.


옷 박스의 아래쪽에는 5년 전까지 다니던 회사에서 입던 교복 같은 정장들이 무기징역을 받은 죄수처럼 딱딱하게 굳어있고,

옷 박스의 위쪽은 살림을 하며 허드레로 입는 목이 다 늘어진 티 쪼가리, 츄리닝 쪼가리들이 날라리 경범죄자 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옷 박스의 중간에는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고 정장처럼 입을 수도 있는 옷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몇 개의 옷들. 바로 목폴라 티들이 장기수 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기징역을 받은 죄수 같은 정장들은 사실 이제 사형을 선고해도 하등 아깝지가 않을 정도로 앞으로도 입을 일이 거의 없어 버리면 될 일이고,

경범죄자 같이 가벼운 츄리닝들은 집에서 입기도 하고 집 근처에 잠시 나갈 일이 있을 때 입기도 해서 아직은 폐기하기에는 사용처가 분명해 버릴 수가 없다.


애매하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장기수인 목폴라 티 들이다. 그들은 용도폐기를 선언하기에도, 꺼내서 활용을 하기에도 참 애매한 존재들이다.

마치,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아직 늙지도 않은 40대의 중반의 내 모습처럼.


버리자니 아직은 쓸모 있을 듯하고 그렇다고 어디 격이 있는 자리에 입고 다니자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옷들.


15년간 회사원이었던 나는 겨울에는 보통 검정색 목폴라티에 목걸이를 포인트로 하고 정장 슈트 바지에 검정 코트를 입고 힐을 신고 회사를 다녔다.

초반 3년간은 신입 사원답게 멋을 부리고 예쁜 옷들을 입고 다녔지만, 애기 엄마가 되고 나서의 12년간은 까마귀가 된 양 위아래로 검정색만 입고 다녔다. 색의 어울림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격식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금상첨화로 따뜻하기까지 한 목폴라티는 회사에 교복처럼 입고 다니기에 제격이었다.


그때 샀던 목폴라티 대여섯 벌이 이제 경단녀가 된 내 눈에 띄었다. 10년 정도 묵어 보풀이 일어나 초라하기 그지없는 목폴라티들.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라 보풀이 쉽사리 일어나고 잘 관리하지 않으면 기장이 짧아지거나 팔이 늘어나서 입기가 애매했었는데 울샴푸로 관리를 잘해 아직 못 입을 정도는 아니다.

겨우 만 원짜리, 만 오천 원짜리 옷들을 뭐 그리 오래 입을 거라고 아끼며 손빨래를 했을까..


아이들을 키우며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며 아끼고 바쁘게 살았던 내 삼십 대의 지난하게 힘들었던 흔적들.


예쁘디 예뻤을 그 나이에 육아에, 살림에, 회사일까지 엄마 아빠의 몫을 동시에 다 소화해 내면서도 힘든지를 몰랐던걸 보면, 아이들 커가는 신비로움에 눈이 한참 멀었었나 보다.

 나 자신을 꾸미는 것에는 1원을 쓰는 것도 아까워하며 아이들 옷에는 몇십만 원을 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아이들 옷은 일이 년이 지나면 작아져 못 입게 되는데도 비싼 옷을 사고, 한 번 사면 십 년 이상을 입을 내 옷을 살 때는 싼 옷을 사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논리적으로는 반대가 되어야 맞는 일 아닌가 말이다.


지금도 아이들의 비싼 옷들은 쉽게 쉽게 버리면서 내 싸고 낡은 옷은 일 년만 더, 일 년만 더 하며 안 버리게 되니 그것도 참 이치에 맞지 않다.


하지만, 보풀이 일고 검은색이 퇴색하여 재색이 되어있는 목폴라티는 애쓰며 살아온 힘들었던 지난날을 보는 것 같아 버릴 수가 없다.


거울을 보면 내 어리던 귀앳머리에는 흰머리가 돋아있고, 반질반질 윤이 나던 내 이마는 잔주름이 져있고, 볼통하니 예뻤던 내 볼은 세월의 흔적인양 그늘이 져 있다.


내 낡은 옷들도 낡고 부끄러운 몰골이지만 아직은 쓸만하니 거둬주시오 하는 듯 나를 보며 부끄러운 웃음을 배시시 물고 있다.

마치 내 모습처럼.


그 옷들을 버리면 나도 같이 폐기처분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에, 장기수 같은 지겨운 놈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하니 그 자리에 좀 더 머물러라 하고 옷장 속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올해도 나는 내 낡은 목폴라티를 버리지 못하고 옷장에 묵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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