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끝자락에서 나를 돌아보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내가 스타트업 조직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인턴’은 내 플랜에 있었을지라도, ‘스타트업’ 인턴은 플랜에 없었다. 5월 말에서 6월 사이, 여름방학 계획을 세우다가 우연히 스타트업 인턴을 선발한다는 학교 공지사항을 보았고, 이상한 용기를 가지고 지원을 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 경험을 조금 더 특별하게 느끼는 이유는, 단 한 번도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봄부터 스타트업이라는 조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빨리 실전(?) 경험을 해 볼 수 있을지 몰랐다.
일정 구독 서비스 ‘린더’를 운영하는 히든트랙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꽤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왔다. 2달 조금 넘게 일한 것에 대해서 뭘 그렇게 큰 의미를 두냐 하는 것 같지만, 이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6개월을 일했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별 의미 없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한 달을 일했을지라도 굉장히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관찰하고, 경험했다. 나에게 주어졌던 소중한 기회를 간직하고 싶어서 글도 남겼고, 사진도 꽤 많이 남겼다.
정말 꽉꽉 채운 한 해였던 2019년. 2019년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은 올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한 해를 더 멋지게 만들어주었던 스타트업 인턴 경험이 내게 어떤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는지 남겨보고자 한다.
1. 기업가정신을 복수전공하게 되었다.
복수전공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오랜 고민을 했었다. 나는 대학교라는 교육 기관에서 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취업 같은 요소를 떠나서 어떤 전공으로 어떤 수업을 들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름 안정적인 경영학과와 약간의 모험을 동반하는 기업가정신을 저울질하다가 결국엔 모험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기업가정신은 타학교에서 ‘벤처경영학과’, ‘앙트프러너십’ 등으로 알려져 있는 전공이다. 내 학교에서는 기업가정신이라는 용어를 쓴다. 모험심 가득한 복수전공을 결정한 후,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수강신청한 과목은 스타트업 마케팅: 그로스해킹 이라는 과목이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다른 팀원 분들께서 자주 사용하셨던 용어들을 꽤 자주 들었다. 예방 주사(?)를 미리 놓았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수업을 들을 때 덜 당황할 수 있었고, “이거 그때 들었던 단어인데?”라고 혼자 생각하며 실전과 이론을 함께 곱씹어볼 수 있었다.
앞으로 린스타트업, 스타트업 캡스톤 디자인, 벤처 투자 등등 쉽지 않은 과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만큼 기대도 많이 된다.
2. 스타트업 가치 & 문화 확산 네트워크의 디렉터가 되었다.
나는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매 학기마다 학교를 다니면서 1-2개 정도의 활동을 추가적으로 하곤 하는데, 인턴을 마치고 바로 다음 학기를 준비하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로운 활동을 찾아 나섰다. 유독 이번에 하고 싶은 활동을 못 찾다가, 스타트업 가치&문화 확산 네트워크의 신규 디렉터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보자마자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이 네트워크에서는 스타트업이나 창업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들이 모여 크고 작은 행사들을 기획함으로써 스타트업 조직에 대한 가치 확산에 힘을 쏟는 활동들을 한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을 모시고 컨퍼런스를 기획하기도 하고, 청소년 창업 캠프를 열기도 하고, 스타트업 네트워킹 파티를 열기도 하는 등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의 총집합이었다. 행사 기획에도 관심이 많은 나에게, 심지어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던 나에게 딱 맞는 활동인 것 같았다.
리쿠르팅은 서류와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열심히 작성한 서류 전형을 통과한 후 진행된 면접에서는, 내가 여태까지 보았던 크고 작은 면접들 중에 말을 가장 많이 한 면접이었다. 면접에서 나의 스타트업 관심 계기부터 시작해서 스타트업 인턴을 한 이야기, 크고 작은 행사에서 일해 본 이야기, 이 네트워크에서 해보고 싶은 경험 등을 설명했다. 내가 정말로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이고 인턴도 나에게 정말 재밌었던 경험이었다 보니,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생긴 분야에 대해서 긴장 없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다. 진심을 다한 나의 관심과 흥미가 곧 자신감으로도 이어지는 듯 보였다.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면접장을 나오니 약 50분이 흘러있었다. 일반 대외활동 면접 치고 긴 시간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면접관들과 함께 대화하듯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흐르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만큼 즐거운 면접이었고, 생각 이상으로 더 열정이 넘쳤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현재 나는 디렉터로서 정말 멋진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타 대학 창업 동아리와 함께 네트워킹 파티를 기획하여 열기도 했고, 내년엔 정말 멋진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다. 너무나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한 네트워크에 속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할 따름이다.
3.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나는 스타트업 인턴을 학교 기업가센터를 통해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학교 측에서도 내가 인턴을 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기업가센터에서 총 4번에 걸친 스타트업 릴레이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에 3차시 특강의 주제가 ‘재학생이 들려주는 스타트업 인턴십 이야기’였는데, 내가 정말 운이 좋게도 이 특강의 연사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대중 앞에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가 잘하든 못하든 이 경험 자체만으로 나에게 너무나 큰 자산이 될 것 같아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회를 잡았다.
강연 준비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강연 날짜가 마침 시험기간이라 시간을 온전히 투자하기 힘들었고, 나에게 30분이나 시간이 배정되어 이 시간을 어떻게 충분히 활용할 지도 고민이었다. 학교에서 개인 발표나 팀플 발표할 때도 30분을 한 적이 없는데…
그냥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달하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타트업 인턴은 어떻게 신청하게 되었고, 면접은 어떻게 보았고, 어떤 일을 했고, 스타트업의 장단점은 무엇이었고, 등등. 스타트업 관심의 시작부터 인턴 종료의 시점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듯이 풀어서 준비했다.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니, 배정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연 당일 나는 준비한 이야기를 열심히 전달해드렸고, 이어진 토크콘서트에서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토크콘서트는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물론 준비해 간 답변도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받은 질문에 대해서 조리 있게 답변을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행사든 Q&A 세션을 이끌어 가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지던지…
어찌 되었든 나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들으러 오신 분들께 너무 감사했고, 이런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었다. 내가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이 즐거웠던 경험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로까지 이어진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도 새로웠다. 가까운 미래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간직하면서,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4. 여전히, 창업은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스타트업에 대한 나의 관심을 표할 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창업할 생각 있어요?”
아직까지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것과 창업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나는 아직까지 전자에 관심이 큰 사람이다. 대기업과는 다른 스타트업만의 일하는 방식, 그들이 만들어가는 문화 등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내 주변에서 창업을 직접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창업은 도전적이고 어렵고 치열한 길이라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트워크 안에서 창업에 뛰어든 친구들이 꽤 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 중에서도 창업을 하고 있거나 창업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정말 힘들고, 고되고, 어려운 길임을 그들도 알지만 본인들이 직접 하나씩 쌓아 올려가는 성취감과 도전에 묵묵히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지. 중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스타트업을 만들어보는 대외활동의 대학생 멘토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맨땅에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꼈었다. 모의로 만들어보는 것도 어려운데 실전은 어느 정도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찾아오면 함께 배를 타 볼 생각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내가 그 시작점이 되기는 아직까지 두렵고 막막하다.
나의 2019년에서 스타트업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앞으로 내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스타트업’은 선택지를 하나 더 얹어주었다. 불과 올해 초만 해도 잘 알려진 기업이나 대기업의 취업만을 생각하던 나에게, 스타트업이라는 꽤 괜찮은 선택지가 생겼다.
나는 스타트업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스타트업 취업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나는 대기업 취업만을 무조건적으로 좇지는 않을 것이며, 스타트업 취업의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아볼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