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인사 담당자의 고군분투기
페이히어의 피플 앤 컬쳐 (People&Culture, 이하 P&C) 매니저로 일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다. 페이히어에 몸담은지는 더 오래됐지만, 이 포지션을 담당한지는 이제 벌써 1년 차가 됐다.
P&C 의 영역에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영역을 다룰 수 있었다. 초반엔 함께할 동료를 모시기 위해 필요한 채용 프로세스 구축, 그리고 그 동료들을 잘 적응시키기 위한 온보딩 프로세스 구축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좋은 분들을 모실 수 있는지, 빠르게 늘어난 동료 분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당 규모에 필요한 새로운 문화와 시스템은 무엇인지, 다양한 형태의 채용(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등)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노무 이슈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동료들이 어떻게 같은 방향성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지 등 규모의 확장에 따라 새로운 일들이 다양하게 늘어났다. 초반에 P&C를 담당해보겠다고 했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이제는 중요하고 필요한 영역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내가 얻었다고 느끼는 건 생각의 확장이다. 다양한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의견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관점들이 내가 사고를 확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해보면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요즘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내가 느끼고 있는 생각들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1. P&C 의 영역도 애자일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어떤 강연을 통해 조직문화도 애자일 하게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어떤 원칙만 정해두고 있으면, 그 원칙에 따라 어떤 시스템이든 문화든 선택해서 빠르게 실행해보고, 피드백을 받고, 해당 피드백을 통해 우리에게 더 맞는 시스템을 향해 지속적으로 디벨롭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얼마 전에 회사에서 빌딩 하기 시작한 동료 피드백 시스템도 해당 방식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정한 원칙은 간단했다. 솔직한 피드백 전달을 통해 동료들 간에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창구를 두고자 했다. 그리고 시스템 자체가 쉬워야 했다. 처음부터 너무 복잡하면 피드백 자체를 일로 느낄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오퍼레이팅 하는 입장에선 복잡할 수 있어도, 실행하는 동료들 입장에선 쉬워야 했다.
준기님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시스템을 최대한 담백하고 간단하게 설계했다. 피드백은 소속 팀 안에서 양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피드백 시트에는 두 가지 항목만 두었다. 해당 동료와 일하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와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두 가지만 두었고, 해당 사항이 없을 경우 안 적어도 된다는 설명도 추가해놓았다. 그렇게 팀별로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피드백을 진행하도록 했고, 최종적으로 모든 팀이 피드백을 작성하고 결과까지 공유하는데 약 한 달 정도 소요되었다. 전체적으로 모든 팀이 진행하는 데는 한 달이 소요되었지만, 각 팀의 관점에서 보면 약 3~5일간의 피드백 작성 기간 후 약 1-3일 후에 피드백 결과가 공유되어서, 각 개인에게는 1주일 정도의 기간 안에 피드백 cycle 이 끝난 셈이었다.
모든 피드백 cycle이 끝난 후에는 전사 인원을 대상으로 피드백 시스템이 어땠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받았다. 진행 기간은 어땠는지, 진행 방식은 어땠는지,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에 대한 의견을 받았고, 해당 의견들을 정리하여 피드백 시스템에 대한 리뷰를 진행했다. 리뷰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그대로 가져가야 할 원칙들은 가져가되, 다른 동료 분들이 주셨던 의견들을 반영하여 다음 피드백 진행 시 조금 더 디벨롭해보기로 했다.
피드백 시스템이라는 걸 처음부터 복잡하게 만들려면 얼마든지 복잡하고 체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드백 시트지에도 여러 가지 항목과 기준을 두어 적게 할 수도 있고, 피드백 대상도 팀 내에서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유관 업무를 하시는 분들까지 모두 작성하게 할 수도 있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일일이 가이드를 주면서 조금 더 일원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설계하려고 하지 않았고, 동료들에게 일단 ‘피드백’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목적과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우리가 피드백을 진행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간단한 항목을 통해 한 번 경험해볼 수 있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피드백을 작성할 때는 이번보다 조금 더 디벨롭된 모습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보기로 했다.
이번 시스템을 설계해보면서 나 스스로도 생각을 많이 바꿀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무언가를 하더라도 늘 완벽하게 하고 싶은 성향 때문에 모든 요소들을 다 고려하고 녹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비효율적일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벽하게 하다 보면 무엇보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빠르고 담백한 실행, 그리고 피드백을 통해 꾸준히 디벨롭하고, 우리만의 문화를 하나씩 구축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애자일 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프로덕트 개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P&C 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필요하고 가능하다.
2. 훌륭한 조직 문화와 인사 시스템은 정말 많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는 병아리 담당자로서 다른 회사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서 쓰고 있는지 자주 찾아보기 마련이다. 여러 회사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다 보면, 그들만의 문화를 정의해서 만들어놓은 모습들이 새삼 대단하기도 하고, 정말 오랜 시간과 고민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다양한 회사들의 사례를 보면서 이 회사가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이렇게 하자!라고 생각하고 실행한 적은 없다. 타사의 사례들을 참고하는 건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할 때 접근 방법을 도와줄 뿐이지 그것이 어떤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고 유명한 회사에서 하니까 우리도 따라 할 필요는 없고, 다른 회사에서 잘하고 있는 것이 우리 회사에서도 잘 맞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규칙이 없는’ 문화를 만들었다.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규칙, 규율, 통제 등을 없앴다. (근무 시간, 출퇴근 시간, 휴가 규정, 결재 승인 절차 등) 대신 그에 대한 책임은 강하게 따른다.
우리도 넷플릭스처럼 여러 규칙을 없애버린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맞는 문화가 될 것인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럴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이지만, 그만큼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만큼의 인재 밀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 회사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동서양 문화의 차이는 없는지 등등의 요소들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규칙이 없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과 시스템이 있는 것이 어떤 회사에겐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3. 100명의 동료들이 있다면, 100개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올해 새로 들어오신 분들께서 입사하신 지 한 달 차가 되면, 순차적으로 1on1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부터 계속 진행하고 싶었던 일인데, (핑계일 수 있지만) 리소스 부족으로 진행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는 동료 선영님이 오시면서, 업무 분담을 통해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던 일들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 들어오신 분들과 회사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내가 1on1을 진행하고자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인데, 무엇보다 새로 들어오신 분들께서 잘 적응하고 계신지, 어렵거나 고민이 되시는 일은 없는지 등을 여쭤봄으로써 각 동료 분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다. 또한 회사에 어느 정도 오랜 기간 있다 보면 회사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워져서, 60명 규모의 페이히어를 처음 바라보는 동료 분들의 fresh한 시각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우리의 기조대로 운영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와 제도들이 새로 들어오신 분들께도 동일한 방향성으로 느껴지시는지 궁금했다.
다양한 분들과 1on1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같은 회사에 있더라도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 이기도 하겠지만,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소도 모두 다르고, 어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모두 다르다. 어떤 팀에 속하느냐에 따라, 본인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누군가는 회사를 일만 하는 공간으로 여기고, 누군가는 일만큼 사회적인 관계도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다른 팀의 동료들과의 교류를 조금 더 원하시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 반면 어떤 분은 그런 요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어떤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거나, 어떤 시스템을 빌딩할 때 누군가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진작에 깨달았다. 그 대신에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모아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많은 분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해갈 것인지와 같은 부분들을 고민하게 된다.
4. P&C 분야는 생각보다 더 어렵고, 부담되는 일이다.
P&C라는 분야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 일이 재밌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문화를 다루는 일, 그리고 그 문화 속에 함께하는, 그리고 함께할 사람을 다루는 일을 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재밌다는 생각보다는 어렵다는 생각을 훨씬 많이 한다. (그렇다고 즐겁지 않은 건 아니다ㅎㅎ) 회사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다 보면 그만큼 다양한 이슈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사람에 대한 이슈는 해결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다. 가끔은 이성과 감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쉽게 지치기도 한다. 어떤 정답이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문화 부분을 다루다 보면, 문화 영역이야말로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여러 가지 관점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OKR이라는 도구로 목표를 얼라인 시키는 문화를 만들고자 할 때, OKR을 무작정 이론대로 우리 회사에 적용했다가 정말 흐지부지 되고 끝나는 문화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 회사의 상황은 어떤지, 각 팀의 상황은 어떤지,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에게 맞는 방식은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채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답이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사나 노무 영역의 경우,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명확히 마련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적인 자문을 받는 과정도 필요하다.
어떨 때 보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라는 요소가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정답이 없는 문화나 사람의 요소가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냥 다 어렵다(ㅎㅎ).
규모가 커지는 회사에서 P&C 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도 쉽지 않은 고민이다. 30명 규모일 때 없었던 문제가 50명 규모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50명 규모일 때 없었던 문제가 100명 규모에서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규모에 따라 P&C 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회사에 필요한 문화, 시스템, 제도도 달라질 것이다. 이 고민도 충실히 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요즘 많은 부담을 안고 회사에 간다. 하지만 함께 고민해주시고, 함께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멋진 시너지를 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 할수록, 눈앞에 놓여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 멀리 내다보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실무도 동시에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롱텀한 계획을 똑똑하게 세울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들고 다니고 있다.
이번 글의 소제목으로 ‘고군분투기’라고 적어놨는데, 시간이 흐르며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모두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루에도 쉽지 않은 순간들이 몇 번씩 찾아오고, 근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동료, 그리고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 맡은 역할 안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은 당연히 있고, 그 안에서 성장통도 자연스럽게 동반된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해온 일보다는 앞으로 할 일,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는 더 어려운 일들이 많겠지만, 그 과정이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기대도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설계하면서 더 단단한 회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좋은 동료와 함께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준비는 되어 있다.